[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정부가 해상 물류 안전과 금융·외환 시장 변동성 등 비상 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중동 사태로 인한 경제 전망은 갈수록 어둡습니다. '하메네이 2기' 강경 노선에 따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에너지 수급과 해상 물류, 금융시장 등 연쇄적인 충격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 상승, 금리, 성장률 둔화가 겹치는 복합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9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강경 노선…치솟고 치솟아
9일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한국은행 등 정부와 관계기관에 따르면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경제·물류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외환 시장 변동성, 에너지 수급, 해상 물류 등 전방위 비상 체계를 가동 중입니다.
중동 긴장의 중심에는 이란 최고지도자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선출에 따른 강경 노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경파 혁명수비대(IRGC)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하메네이 2기' 체제의 출범은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강대강' 국면에 진입했음을 방증합니다.
에너지·물류·금리·성장으로 이어지는 '복합 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는 겁니다. 앞서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세계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성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제금융센터와 주요 IB의 분석을 보면, 중동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배럴당 유가는 120~130달러선까지 치솟을 전망입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공급 차질 현실화에 따라 1970년대식 '오일 쇼크'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로 인해 해당 해역을 통과하는 물동량은 평시 대비 약 80% 감소하는 등 사실상 마비 상태에 가깝습니다. 최근 영국 해상무역기구(UKMTO) 등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수는 이란의 위협 직후 일평균 50척에서 사실상 0~3척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통행량이 사라진 자리를 높은 위험수당을 받는 극소수의 선박이 채우면서 운임이 치솟는 구조입니다.
물류·운임과 관련해서는 홍해에 이어 걸프 해역까지 위험 지대로 변하는 등 해상 운임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주 대비 156.08포인트 상승한 1489.19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중동 노선 운임은 일주일 만에 72.3% 폭등하며 전체 지수 상승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세계 3위 선사인 프랑스 CMA CGM 3월 초부터 중동 노선을 이용하는 모든 화물에 대해 긴급분쟁할증료(Emergency Conflict Surcharge, ECS)를 부과했습니다. 금액은 화물당 최소 2000달러에서 최대 4000달러에 달합니다.
홍해에 이어 호르무즈 해협까지 위험 범위가 확대되면서 전쟁위험할증료(War Risk Surcharge, WRS)를 적용 중인 MSC 및 머스크(Maersk)는 3월 중순부터 추가적인 긴급 유류 할증료 도입도 예고한 상태입니다.
지난 6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경상수지 흔드나…변동성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언급한 '호르무즈 해협 우회 대체 공급선 발굴' 지시는 단순히 에너지 수급 불안뿐만이 아닌 수출입 기업들의 제조원가를 직접 타격하기 때문에 나온 긴급 처방인 셈입니다. 더욱이 공급선 발굴과 100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 등을 지시한 배경에는 물류비 폭등에 따른 수입 물가 자극과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하는 '공급망 쇼크'가 우려되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파고는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합니다. 고유가와 고금리가 지속될 경우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석유화학 제품의 글로벌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입니다.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에 쏠려 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로 치솟을 경우 원유 수입액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수출 증가분을 상쇄, 경상수지 흑자 폭을 대폭 축소시키거나 적자 전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강봉주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한 일부 대체 수송로들이 존재하나 호르무즈 해협 수송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며 "단기간 내 현실적 해결 방안이 제한적으로 국제유가는 호르무즈 해협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돼 당분간 큰 폭의 변동성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전문가는 "정부가 밝힌 '호르무즈 해협 외 대체 경로 확보'는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나온 선제적 방어 기제"라며 "중동발 고유가·고환율 쇼크가 수입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고착화하면서 당초 기대했던 금리 인하 시점은 대폭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한미 금리차와 환율 급등에 따른 자본 유출 압력까지 더해지며 물가 안정과 환율 방어를 위한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석유가 안정화 방안과 관련해 "최근 중동 상황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이고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석유 가격을 책정해 달라"며 "국제유가 상승에 편승해 민생 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월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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