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사망 '아리셀 참사' 항소심서 4년…'중대재해법 취지' 또 훼손
박순관 대표 1심 15년→ 2심 4년, 아들도 15년→7년
법원 "유족 합의…양형에 '제한적 반영' 신중해야"
유족들 "23명이 죽었는데 4년이라니 …말도 안돼"
2026-04-22 18:50:40 2026-04-22 19:16:47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23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4년이라니. 한국 법은 원래 이렇습니까?”
 
22일 오후, 수원고등법원 801호 법정. 선고가 나온 직후 방청석 곳곳에선 절규가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유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를 향해 “우리 아이를 살려내라”라고 외쳤습니다. 
 
수원고법 형사1부(재판장 신현일 부장판사)는 이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파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가 박 대표를 징역 15년에 처했던 걸 고려하면, 2심에선 형량이 대폭 줄어든 겁니다.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2024년 8월28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대기장소인 수원남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박순관 대표의 아들)에겐 징역 7년에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역시나 징역 15년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결과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하면서도, 화재로 인한 사상의 결과 사이엔 직접적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화재로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상해를 입어 그 결과가 매우 중하다”면서도 “다만 아들에게 아리셀 업무 중 상당 부분을 맡긴 이유에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이나 파견법상 책임을 면탈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라고도 했습니다. 
 
감형의 다른 사유는 합의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 전원 및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과 모두 합의했다”며 이를 양형에 반영했습니다. 일부 유족이 엄벌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급기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 반영은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1심 판단과 정면으로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유족들은) 장기간에 걸친 법적 분쟁을 버틸 수 없거나 경제적 형편 등 여러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합의가 됐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며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인정했던 ‘각 층의 비상구 설치 의무’ 판단도 뒤집었습니다. 원심은 위험물질 취급 건축물 전체에 비상구 설치 의무를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없는 이 사건 공장 3동 2층에 별도의 비상구를 설치하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확장 해석”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비상구 및 비상 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할 의무 위반 여부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박 대표보다 박 총괄본부장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박 총괄본부장에 대해 “아리셀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해온 점 등 책임의 정도가 박순관에 비해 무겁고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크다”면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법정형은 금고 5년 이하이고 군납 전지 관련 사기 범행의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 30년 이하로 무겁기는 하나 피해액을 전액 변제한 점 등에 비추어 사기 범행이 있음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사상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밖에 1심에서 징역·금고형이 선고돼 법정구속된 아리셀 상무 등 3명에겐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및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항소심 선고 직후 22일 아리셀 유가족들이 수원고등법원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판결 직후, 유족과 유족 측 대리인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아리셀 참사로 사망한 고 엄정정씨의 유족은 “(화재로 소실돼) 팔다리 없이 몸뚱이만 갖고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징역) 4년이 뭐냐”며 “이주노동자들이 죽어서 그런 것이냐. 우리가 돈이 없고 권력이 없어서 이런 판결이 난 것이냐”라면서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아리셀 참사 유족을 대리하는 신하나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항소심 선고는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무력화한 판결”이라며 “이 정도 사건에서 징역 4년이 나오면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앞으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리셀참사대책위원회도 입장문을 내고 “박순관의 감형 사유는 오직 ‘합의’”라며 “생계의 문제로 민사상의 합의가 불가피한 유가족에게 ‘합의를 했으니 가해자에게 벌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법과 원칙,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법원이 앞장서서 '돈 앞에 정의 따위는 없다'고 선고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그간 중대재해처벌법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2022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초기엔 강력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 예상됐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가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전수조사 결과, 시행 3년간 중대재해처벌법의 집행유예율은 85.7%에 달했습니다. 실형이 선고된 사건에서도 평균 형량은 1년1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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