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위대한 대한민국과 '적당히' 타협할 수 없는 가치
2026-05-26 11:56:38 2026-05-26 11:56:38
최근 스타벅스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전후해 마케팅에 ‘탱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불거진 이른바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좌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서글픈 단면이다. 더욱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스타벅스는 잘못했고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이 정도 때렸으면 됐다"며 "역사적 아픔 앞에서 적당히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발언한 것은 심각하게 퇴보하고 있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현실을 대변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경제·문화적 번영을 구가하며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불릴 수 있는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단순히 GDP의 성장이나 화려한 빌딩 숲 때문이 아니다.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려 했던 거룩한 고투, 즉 철저한 인본주의(Humanism)에 기반한 민주화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그 정점에 있는 역사다.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총칼 앞에서도 광주 시민들이 서로를 지키고 주먹밥을 나누었던 공동체 정신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숭고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그 숭고한 역사적 맥락을 철저히 소거해 버렸다. 광주 시민들의 가슴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압살했던 상징인 '탱크'라는 잔혹한 흉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한낱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가벼운 마케팅 용어로 전락한 현실은 참담하다. 이는 군사정권의 독재와 학살에 희생된 무고한 국민들을 향한 잔인한 조롱이자, 유가족들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는 가해 행위와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국민을 존중하지 않고, 국민의 희생을 가볍게 여긴 지도자들이 이끈 나라의 결말은 늘 비극적이었다. 총칼로 자국민을 학살하며 정권을 잡았던 과거 독재 정권의 말로가 그러했고, 그 시대를 미화하거나 방조하는 현재의 일부 기득권층 역시 국가의 도덕적 파산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역사적 아픔을 존중하지 않는 지도자들과 자본 권력이 득세할 때, 국가는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강자만의 생존 게임장으로 변질된다. '적당히' 선을 넘나들며 역사의 비극을 소비재로 만드는 행태를 묵인한다면,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정의'와 '기억' 대신 '망각'과 '조롱'을 가르치는 꼴이 된다.
 
이번 사태의 가장 깊은 이면에는 자본주의에 눈이 멀어 국가 정체성까지 잃어가는 퇴보하는 민주주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거대 기업들은 이윤 창출을 위해서라면 역사의 비극조차 힙(Hip)한 콘텐츠나 자극적인 키워드로 소비해 버린다. 도덕적 성찰이나 역사적 부채 의식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쉽게 생략된다.
 
자본이 도덕과 역사 위에 군림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를 치르는 제도가 아니라,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이를 통해 성찰하는 시민 의식으로 지탱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자본은 괴물이 되고, 그 괴물을 방치하는 사회의 민주주의는 반드시 퇴보하기 마련이다.
 
스타벅스라는 글로벌 브랜드가 보여준 이번 불감증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서 정작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뼈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위대한 대한민국'은 결코 물질적 풍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5·18은 결코 가볍게 소비되거나, 마케팅의 얘깃거리로 전락할 수 있는 '적당한' 사건이 아니다. 국민의 피로 쓴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기업과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이제라도 자본의 폭주를 멈춰 세우고, 인간 존엄이라는 인본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의 본령을 다시금 엄숙하게 되새겨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결코 자본의 '적당주의'와 타협할 수 없는 가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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