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파일을 직접 전송하거나 유포하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상통화 기능을 통해 성적 촬영물을 제3자에게 '보여주기만 한 행위'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유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교묘해진 신종 디지털 성범죄 유통 방식을 법원이 엄중하게 단죄한 결과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한 시민의 모습. (사진=뉴시스)
*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지난 6월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20부(정아영 부장판사)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물 반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피해자 B씨와 교제하다가 2024년 12월 중순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후 A씨는 지인 C씨와 영상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B씨와 교제할 당시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과 사진을 C씨에게 보여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성관계 영상을 파일로 전송(업로드·다운로드)하지 않고,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 행위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2항이 규정한 '제공'에 포함되느냐였습니다. 2항엔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됐습니다.
이에 대해 A씨는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파일 자체를 전송하지 않고 실시간 영상통화 방식으로 화면을 공유해 보여준 방식은 성폭력처벌법에 규정된 '제공'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A씨 측은 "파일 자체를 상대방에게 전송한 적이 없으며, 실시간 화면 공유 방식으로 잠시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파일 전송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확산 위험까지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은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제3자에게 유통시키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촬영 대상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촬영물에 대한 통제권을 보호하려는 데 취지가 있다"면서 "화면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녹화 등 기능으로 손쉽게 저장 및 복제가 가능한 경우 상대방에 의한 반복적인 시청 및 확산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A씨와 영상통화를 하던 C씨가 화면 공유로 재생된 성관계 영상을 녹화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토대로 A씨의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촬영물에 대한 통제권, 성적인 자료의 열람과 확산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했습니다.
오민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기존 판례처럼 제공의 의미를 좁게 해석하면 법이 예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불법 촬영물을 유통하더라도 제재하기 어려운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면서 "이번 판결은 화면 공유 방식으로 손쉽게 저장·복제가 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