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뒤의 환경평가)②'읽을 수 없는' 평가서, '들을 생각 없는' 공청회
2026년 접수된 환경영향평가서 10건 전수 분석…평균 1천쪽 '진입 장벽'
전문용어·수치 가득한 환경영향평가서 …주민은 '난해', 전문가도 '암담'
구분 없는 설명회 ·공청회, '2회 무산'땐 개최로 간주'…'주민 패싱' 전락
2026-06-26 11:55:23 2026-06-26 11:55:23
[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올해 접수돼 공개된 환경영향평가서 10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평균 분량이 1000쪽을 훌쩍 넘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행정기관의 장과 사업자 등은 평가서 초안을 주민에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주민들이 수천쪽에 달하는 어려운 평가서를 직접 읽고 의견을 내도록 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설명회와 공청회마저 주민들 참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행정적 절차 이행'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입니다. 
 
<뉴스토마토>가 25일 기준으로 접수된 2026년도 환경영향평가서 10건을 분석한 결과, 1개의 평가서 평균 분량은 약 1300쪽이었습니다. 2000쪽 안팎에 달하는 평가서도 있었습니다. 법적 절차에 따라 공개되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난해한 전문 용어·수치로 가득한 평가서를 일일이 꼼꼼하게 읽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셈입니다. 

'30년 환경운동가'도 "암담"…주민에겐 '벅찬' 원자료
 
실제로 취재팀이 서울 강남구 대치2동주민센터를 찾아 비치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직접 확인한 결과, 2000쪽에 달하는 분량에 항목별 수치와 표, 전문 용어 등이 빼곡해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이 어려웠습니다. 현장의 담당 공무원 역시 평가서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자료 관리와 의견 제출 방법을 안내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2019년 5월16일 남양주왕숙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설명회에서 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이 평가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지역의 주민은 공람 시작일부터 공람 종료 후 7일 이내까지 서면으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지만, 항목별 내용이 철저히 전문가 시각으로 작성된 탓에 일반 주민이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의견을 내는 건 쉽지 않은 겁니다. 전문가들도 이런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영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팀장은 "일반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지하수 유출을 어떻게 모델링해서 방지하겠다'라는 내용을 들어도 주민들은 한 번에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임희자 환경영향평가제도개선전국연대 집행위원장도 "환경운동을 30년 넘게 한 나도 처음 평가서를 볼 때면 암담한 기분"이라며 "7~8개 전문 분야에 걸쳐 서술돼 일반 시민이 보기에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평가서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일반 시민 입장에서 이 책을 보면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평가서는 기본적으로 '쉬운 설명' 보다는 '원자료를 최대한 공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겁니다.
 
박영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가서 공개 방식을 주민 눈높이에 맞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과 환경영향평가서등 작성 등에 관한 규정 등엔 평가서에 관한 '요약서'를 작성·게시하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전문 용어 중심의 축약본에 머무른다"며 "주민용 요약서, 쉬운 평가서, 핵심 쟁점별 10쪽 요약본, 저감 전·후 비교표 등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2023년 3월7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리셉션홀에서 서울시 주최로 열린 광역자원회수시설 입지선정 전략환경영향평가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민 의견 수렴은 뒷전?…공청회 2회 무산되면 '패스' 
 
평가서를 이해하고 의견서를 제출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설명회와 공청회도 주민 참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먼저 설명회와 공청회가 구분 없이 운영되는 탓에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사실상 무시됐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설명회와 공청회는 엄연히 다릅니다. 설명회는 사업자가 평가서 초안 내용을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고, 공청회는 주민 30명 이상이 '개최해야 한다'는 안건을 내서 마련된 공식적 주민 의견 수렴 절차입니다.
 
김재윤 보은군귀농귀촌협의회장은 보은~오창 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해 "공청회라고 돼 있었지만 사실상 설명회였다"면서 "1차 공청회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공청회 사실을 모르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군청에 민원을 넣었고, 그제야 2차 공청회 때 초대장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역시 지난 2022년 진행된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공청회에 대해 "말은 공청회지만, 설명회처럼 진행됐다"며 "주민들 의견을 듣기보다는 사업자 측이 미리 정한 사람들이 나와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고 했습니다. 
 
공청회가 주민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절차 완료를 위한 '형식적 장치'로 받아들여진다는 불신도 깊습니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제41조(설명회 또는 공청회의 생략)엔 '주민 등의 방해로 설명회·공청회가 2회 이상 개최되지 못하거나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엔 해당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박상현 위원장은 고리 원전 2호기 공청회와 관련해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주민 반대를 이유로 (설명회와 공청회를) 두 번 무산시키면서 공청회를 한 걸로 쳤다"며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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