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규제를 문제 삼는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한·미 간 통상 마찰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보고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정치권에서는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특히 쿠팡을 둘러싼 규제 문제가 한·미 동맹과 통상 현안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파장이 주목됩니다.
미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가 1일(현지시간) '미국인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사진=미 하원 법사위 보고서 갈무리)
미 하원 "미국인 기업 차별 대우 심해"
미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는 1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미국인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라는 제목의 35쪽 분량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은 수십 년간 미국인 소유 기업을 표적으로 삼아왔으나 차별적 대우는 최근 몇 년 새 상당히 심해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런 관행에는 강압적인 조사 전술, 지나치게 과도한 규제 요건, 그리고 미국 기업을 처벌하고 한국 기업과의 효과적 경쟁을 어렵게 하는 막대한 벌금과 과징금 등이 있다"며 "특히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미 기업에 대한 공격에 공격적"이라고 적었습니다.
이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쿠팡 측 자료와 증언에 절대적으로 기댄 일방적인 문서"라며 "37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우리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판단은 언급조차 없고, 국민의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갔을 수 있다는 안보적 우려는 단 한 줄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정부의 초동 대응이 적절치 않았다는 질타도 나옵니다. 보고서 발표에도 반박 입장을 발 빠르게 내지 못하며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보고서가 나온 지 하루가 지나도록 우리 정부는 반응이 없다"며 "슛이 날아오는데 골문을 비워둔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외교부는 뒤늦게 유감을 표했습니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쿠팡에 대해서 차별적인 조사와 부당한 규제를 지속하고 있다는 보고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간 미국 법사위 측과 소통하면서 우리 입장을 충분히 밝혔는데도 보고서에는 일방적인 쿠팡의 입장만 담겼다는 겁니다.
이어 "쿠팡에 대한 조사 및 조치는 우리 국내법에 따라서 적법하고 비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국적과 관계가 없이 공정한 기업 활동 환경을 보장하고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정부는 법사위를 비롯한 미 의회와 행정부를 지속적으로 접촉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방침입니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한·미 무역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지난 2021년 3월1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한·미 동맹 약화 '시그널' 관측도
외교부의 해명에도 최악의 경우 한·미 통상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이번 미 법사위의 보고서 발표는 쿠팡의 동일인을 기존 법인에서 김범석 의장으로 변경 지정한 공정위의 결정이 트리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위는 지난 4월29일 이 같은 내용을 의결했습니다. 미국 국적자인 김 의장은 그간 형사처벌 리스크를 피하고, 차등의결권을 통해 실질적 지배력만 행사하기 위해 총수 지정을 피해왔습니다.
하지만 총수에 오르며 사익 편취 규제 등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습니다. 쿠팡이 기존에 제출한 '친족 경영 미참여 확인서'의 허위 여부에 따라 김 의장이 형사고발 대상이 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쿠팡의 대미 로비가 이번 보고서 발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간 쿠팡이 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통해 우회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정황이 포착되곤 했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초 대미 투자 압박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몽니에 나선 것도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중단하라는 경고성 메시지였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쿠팡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던 중이었습니다.
야권에선 미 법사위의 보고서 발표를 그간 한·미 동맹 약화의 결과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지시가 있었다는 쿠팡 측 주장이 보고서에 담긴 점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올해 초 대미투자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았던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쿠팡을 넘어 한·미 동맹 전체의 문제"라며 "충분한 입장 전달이 이뤄졌다면 반영된 보고서가 나왔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미 관계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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