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를 활용하는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추진합니다. 최대 100조원 규모의 재원을 국회 통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기금으로 운용하는 방안입니다. 사실상 '상시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대규모 재정 집행에 따른 물가 자극과 재정 건전성 훼손 가능성도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세수입 전망치 외 세수, 기금 활용
류덕현 청와대 재정기획보좌관은 7일 유튜브 '청와대 팩트방앗간'에 출연해 "(추가 세수를) 좀 더 계획적으로 실효성 있게 국민에게 돌려줄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미래대응기금을 고안한 것"이라며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미래대응기금은 반도체 호황 등으로 발생한 '추가 세수'를 활용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크게 △3대 메가프로젝트 등 미래 성장 동력 창출 △양극화 대응 △청년 주거·창업·일자리 지원 등에 미래대응기금을 활용한다는 구상입니다. 당정은 지난 5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당정은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습니다.
정부가 초과 세수를 보다 쉽게 전략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미래대응기금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세수 증가분은 연내 추가경정예산(추경)이나 기금 등으로 활용되지 않으면 '세계잉여금'으로 남게 됩니다. 세계잉여금으로 넘어간 초과 세수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국가채무 상환 등 사용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어 유동적인 용처 변환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제는 미래대응기금이 사실상 상시적 추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추가 세수'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정부는 각 해당 연도의 세입 전망을 넘어서는 세수를 '추가 세수'로 규정하는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지속 등의 여파로 최근 국세수입 전망치를 벗어난 세수 중 상당액을 기금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입니다.
미래대응기금의 규모는 최대 100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정부는 올해 국세수입 전망을 390조2000억원에서 415조4000억원으로 상향했습니다. 초과세수만 25조2000억원으로, 실제 규모는 이를 크게 넘어설 전망입니다. 특히 정치권 안팎에선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올해 초과 세수 규모를 100조원으로 관망하고 있습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5일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천문학적 유동성 방출에 '불안 ↑'
더 큰 문제는 1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시장에 한꺼번에 풀릴 때 발생할 경제적 부작용입니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고물가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점에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집행을 감행한다면 시중 유동성을 과도하게 자극해 물가 불안을 심화시키고, 자산 시장의 왜곡을 초래해 '거품 경제(버블)'를 형성할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간 우리 정부가 편성했던 역대 추경 규모와 비교해 봐도 100조원은 전례가 없는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코로나19 위기가 극에 달했던 2020년 당시 네 차례에 걸친 추경 총액이 약 67조원입니다. 역대 단일 추경 중 가장 규모가 컸던 2022년 제2회 소상공인 손실보상 추경도 59조4000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중동 분쟁 여파 등으로 불과 몇 달 전 편성된 올해 전쟁 추경조차 26조2000억원 규모였습니다.
국회의 견제 기능 약화도 문제입니다. 국회는 예산 심사 권한을 쥐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만 정부는 특별법 형태로 기금을 신설할 방침인데, 기금 운용안은 예산안과 비교해 국회 심의 허들이 낮습니다. 기존 운용 계획의 20% 안에서만 지출 규모가 늘어날 경우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일각에선 자칫 정부의 '쌈짓돈'처럼 기금이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이밖에 국가재정 운용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세계잉여금의 30% 이상은 국채·차입금 원리금 상환에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래대응기금은 설계 방식에 따라 국채 상환 의무를 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전체 국가채무 중 국민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 비중은 최근 5년 새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지난 2019년 56.4% 수준이었던 적자성 채무 비중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와 세수 결손기를 거치며 최근 71.0%를 돌파, 불과 5~6년 만에 15%포인트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일각에선 재정의 질을 나타내는 적자성 채무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70%를 넘어선 만큼 초과 세수를 국채 상환에 우선 투입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대규모 재정 집행을 강행한다면, 국가재정법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미래세대의 빚 부담을 방치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지금 국가재정 운용보다 더 위급하고 긴급한 것이 있나"라며 "107조원을 국채로 적자를 보전하면서 과거 3~4년 평균 증가율보다 약간 더 들어오는 반도체 세수에만 관심을 갖고 지출 세입 간 큰 격차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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