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외친 조봉암…온전한 독립운동가로 예우해야"
10월10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제3회 추모 음악회' 개최
1·2회 추진한 박흥열 한강하구평화센터 대표 인터뷰
"죽산의 평화통일…함께 살아갈 미래를 설계하는 일"
"한강하구·박물관·강화도행렬도 활용 남북 소통해야"
2026-07-20 16:17:55 2026-07-20 17:58:23
[뉴스토마토 최태용 기자] 인천 강화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을 '온전한 독립운동가'로 예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승만정권에서 사법 살인을 당한 후 금기시됐던 죽산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하는 세 번째 추모 음악회도 오는 10월10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립니다. 
 
앞선 1·2회 행사가 죽산의 고향인 강화군에서 열렸다면, 3회 행사는 그의 정치적 고향인 인천 부평구에서 개최됩니다. 죽산은 현재의 부평구·계양구 등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1·2회 음악회에서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박흥열 한강하구평화센터 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조봉암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촉구를 위해 그의 정치적 고향인 부평에서 3회 음악회를 열게 됐다"며 "올해는 죽산이 광복절에 서훈도 받고, 이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9월 인천 강화군 강화문예회관에서 제2회 조봉암 추모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강하구평화센터)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조봉암 선생 추모 음악회 추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선생 고향인 강화에서조차 죽산에 대한 오해와 이념적 편견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2001년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건립한 이후로는 군민들과 함께하는 추모 사업이 없었습니다. 이에 한강하구평화센터 차원에서 죽산의 사상을 알리고자 음악회를 시작했습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선원사 성원 스님, 창녕 조씨 종친회, 강화남부농협,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 등의 협조로 행사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음악회가 올해로 3회째입니다. 앞선 1·2회와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1·2회는 선생의 고향인 강화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3회는 죽산의 정치적 고향인 인천 부평에서 개최합니다. 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강화군을 넘어 인천 시민 전체의 관심과 동참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죽산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에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고, 해방 이후엔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며 농지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민생·민주·평화를 핵심 가치로 삼아 진보당을 창당했던 그의 삶은 결코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제2대 대선 기간이었던 1952년 8월 부산에서 조봉암 무소속 후보가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인천문화재단)

조봉암 선생은 2011년 재심을 통해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독립유공자 서훈은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훈 당국이 서훈을 거부하는 명분은 선생이 일제 말기 국방헌금을 기탁했다는 의혹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근거로 제시한 문건들은 오류투성이입니다. 1940년 <매일신보> 신년 광고에 '성관사 조봉암'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정작 해당 업체는 당시 등기 기록이나 상공업편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의주형무소에서 막 출감해 생계조차 곤란했던 죽산이 거액의 신년 광고를 냈다는 것 역시 현실성이 전혀 없습니다. 누군가 이름을 도용했거나 동의 없이 실은 광고일 가능성이 큽니다.
 
1941년 인천경찰서를 통해 휼병금(군인을 위문하기 위해 보낸 돈) 150원을 기탁했다는 보도 역시 집 주소가 잘못 기재돼 있습니다. 당시 교사 월급이 40~50원에 불과한 시절이었습니다. <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경찰의 공작이거나 날조된 기사일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국가보훈부가 국가기관이라면 조선총독부 문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게 아니라, 보다 면밀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조봉암 선생이 외쳤던 '평화통일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선생의 평화통일론은 단순한 감상적 평화주의가 아닙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은 정치인이 내놓은 매우 현실적인 국가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죽산의 주장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소련이 평화공존 노선을 채택하고, 제네바 회담과 반둥회의 등 미·소 간의 전면전을 회피하려던 당시 국제 정세를 정확히 짚어낸 세련된 외교노선이었습니다. 죽산이 말한 평화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고, 통일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남북이 함께 살아갈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박흥열 한강하구평화센터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죽산의 평화통일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에게도 남북 관계의 안정은 안보와 경제, 외교적 자율성에 직결되는 중대한 과제입니다. 남북 간 대화가 끊기면 군사적 충돌 위험이 커지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도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깊어지더라도 대화와 소통의 채널만큼은 반드시 유지해야 합니다.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갈등 그 자체보다, 갈등을 관리할 최소한의 수단마저 사라지는 단절이기 때문입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고도의 정치·군사적 협상은 중앙정부의 몫이지만, 역사·문화·환경·학술 분야의 교류 협력은 지자체와 민간이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접경지역인 인천과 강화는 남북 관계가 단절되면 군사적·경제적 규제를 고스란히 떠안지만, 반대로 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교류와 서해평화경제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요충지입니다.
 
가장 먼저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명시됐던 '한강하구 공동이용' 조항을 복원해야 합니다. 당시 남북이 공동 수로 조사를 통해 해도까지 제작한 바 있습니다. 이를 다시 활용한다면 한강하구와 강화를 남북의 물류·관광·수산·환경이 융합되는 평화경제 플랫폼으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강화에 추진 중인 국립강화고려박물관과 북한 개성 고려박물관의 연계 사업, 오는 2032년 고려 강도 천도 800주년 공동 학술사업, 북한 국보급 유물인 '강화도행렬도'의 디지털 복원 작업 등은 민간 차원에서 미리 준비해 둘 수 있습니다. 
 
최태용 기자 rooster8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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