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뉴딜)⑤근로소득이 흔들리면 무엇으로 사는가
국회 산자위 소속 김종민 의원 특별기고
국민자산제, 자산소득 대중화, 두 번째 농지개혁
2026-08-04 06:00:00 2026-08-04 06:00:00
몇 년 전 기본소득 논쟁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 미래전략 논쟁이었다. 당시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현실이 된 AI 대전환. 대한민국은 이 파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4년 동안 국회 정무위와 산자위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왔던 김종민 의원이 7회에 걸친 연재 기고를 통해 대한민국 미래전략 '대전환 뉴딜'을 제안한다. 여러 쟁점에 대해 다양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지난 글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의 '일'을 다시 정의하자고 했다. 그래도 남는 질문이 있다. 생계는 무슨 돈으로 해결하는가.
 
퇴직 후 소득이 필요해 치킨집을 차렸다가 3년을 못 넘겼다는 이야기는 이제 흔하다. 요즘 30대는 지금부터라도 자산을 만들어야겠다며 부동산에 영끌로 올라탔다가, 코인으로 옮겼다가, 이제는 퇴근길에 주식 계좌를 들여다본다. 월급만으로는 불안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지 꽤 됐다. 개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바뀐 탓이다.
 
2024년 1월2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산이 노동을 앞지르는 시대
 
근로소득, 일해서 버는 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일자리를 빨아들이고, 부는 소수에게로 흐른다. 피케티가 경고했듯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가 '일해서 버는 속도'를 앞질렀다. 
 
그런데 그 자산마저 고르게 퍼져 있지 않다. 주식자산 상위 10%가 개인투자자 전체 주식의 83.7%를 쥐고 있다(한국예탁결제원). 근로소득 상위 10%의 급여 비중(31.7%)과 비교하면 주식의 쏠림이 압도적이다.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나라에서 성장의 과실을 나르는 금융·지분 자산은 소수의 손에 있으니, 주가가 올라도 그 열매는 대다수를 비껴간다. 이대로 방치하면 불평등은 자동으로 증폭된다. 초격차는 대물림되고 세습이 구조가 된다. 복지 이전에 공동체의 생존 문제다.
 
답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안 되니 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문제는 그 길이 하나같이 각자도생이었다는 데 있다. 종잣돈 없이는 부동산에 오르지 못하고, 코인은 너무 위태로웠고, 카지노라는 말까지 듣는 증시에서 개미 혼자 버티기는 어렵다. 개인이 올라탈 트랙이 마땅치 않다. 근로 소득이 불안해지는 시대에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자산소득 플랫폼이 없는 것이다.
 
길은 하나다. 걷어서 나누는 방식 말고 시장의 흐름 속에서 푸는 것이다. 농지개혁에 비유하자면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상매수 유상분배'에 가깝다.
 
모든 농민에게 땅을, 모든 국민에게 자산을
 
그동안 국민들의 소득은 세 가지에서 나왔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 나라에게 보완해 주는 이전소득, 자산이 주는 자산소득이다. 부족한 소득을 해결하는 길도 세 계단으로 올라간다.
 
첫 번째 계단은 기본소득이다. 모두에게 조건 없이 주자는 발상인데,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씩만 줘도 한 해 186조원, 나라 예산의 4분의 1이 든다. 재원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게 숙제다.
 
두 번째 계단은 앞서 제안한 활동소득이다. 옳은 방향이지만, 근로소득의 축소를 보완할 뿐 대체하는 수준까지는 어렵다.
 
세 번째 계단이 자산소득의 대중화다. 부가 자산으로 몰린다는 사실에 주목해, 자산소득을 소수가 아니라 모두의 것으로 넓히자는 것이다.
 
이전소득은 기본소득이, 근로소득은 활동소득이, 자산소득은 국민자산소득이 보강한다. 기본소득이 물고기를 나눠 주고 활동소득이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국민자산제는 물고기 잡는 강의 지분을 주는 것이다.
 
자산소득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소수만 누린다는 데 있다. 비난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누리게 하면 된다. 우리는 이미 한 번 해봤다. 땅의 시대에 "모든 농민에게 땅을"이라는 농지개혁으로 소작의 사슬을 끊고 산업화의 토대를 놓았다. 자산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그에 준하는 자산개혁이 필요하다. 그 해답이 국민자산제다. "모든 국민에게 자산을." 근로소득이 저무는 시대에 보통 사람이 딛고 설 두 번째 땅이다. 다만 방법은 다르다. 몰수와 분배가 아니라 출자와 대출이다. 금융이 발전하면서 유상매수는 출자로, 유상분배는 대출로 진화했다. 발상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설계다.
 
지난해 11월24일 서울 시내 은행 창구. (사진=뉴시스)
 
세계는 이미 세 갈래 길을 걷고 있다
 
첫째, 개인계좌형이다. 미국 401(k)은 적립하면 기업이 얹고 세금을 미뤄 주는 방식으로 7000만명 가까이 참여시켰다. 수많은 미국 중산층이 노후에 그 덕을 보고 있다. 그러나 자발적 가입에 맡긴 탓에 민간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제도 밖에 있다. 개인 선택에 맡기면 그 사다리조차 격차를 복제한다.
 
둘째, 공동기금형이다. 캐나다는 1997년 연금 고갈 위기에서 보험료를 올리고 정치에서 독립된 전문 기관을 세워 세계 시장에 굴렸다. 그 거버넌스 덕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셋째, 국부펀드형이다. 노르웨이는 국부펀드를 '원금은 보존하고 실질수익 안에서만 쓴다'는 준칙으로 운용한다. 알래스카주는 석유로 번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그 수익을 모든 주민에게 해마다 똑같이 배당한다. 그 땅의 자원이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배당액을 정치가 정하기 시작하자 원칙이 흔들렸다. 배당은 선거가 아니라 규칙에 맡겨야 한다는 교훈이다.
 
우리는 세 길에서 하나씩 가져오면 된다. 개인계좌형에서 '내 자산'이라는 참여의 힘을, 공동기금형에서 독립 거버넌스를, 국부펀드형에서 지출 준칙과 배당의 규칙을. 이렇게 해서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힘을 함께 세우자는 게 국민자산제의 기본 설계다.
 
지난달 20일 서울 시내 은행 대출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월 150만원, 어떻게 만드나
 
국민자산제는 이렇게 작동한다. 국민 한 사람 앞에 1억원의 종잣돈을 만들고, 그 참여로 만든 기금을 20년간 굴리고, 불어난 자산의 5%를 해마다 배당으로 돌려준다. 20세에 시작하면 40세부터 월 150만원을 받는다.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월 65만원 안팎)의 두 배가 넘고, 부부면 월 300만원으로 노후 적정생활비에 들어맞는다.
 
1억원을 연 7%로 굴리면 20년이 채 안 되어 약 3억6000만원이 된다. 연 7%는 국민연금이 설립 후 실제 기록한 수익률(연 8%대)보다 낮춰 잡은 것이다. 여기서 해마다 5%를 배당하면 연 1800만원, 월 150만원이다. 7%를 벌면서 5%만 쓰는 것은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수익만 쓴다는 원칙 때문이다. 원금의 실질가치를 건드리지 않아야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세 가지 의문이 남는다. 첫째, 자산 없는 사람은 1억원을 어떻게 만드나. 자력으로 가능한 사람은 세제 혜택으로 유인하고, 자력으로 안 되는 이들에게는 국민자산펀드에만 투자하는 전용 대출 트랙을 열자. 대출금이 개인에게 흩어지지 않고 펀드에 그대로 들어가니 위험이 크지 않고 금리도 낮게 설계할 수 있다. 그 재원은 앞서 말한 빅테크와 자산가의 출자다.
 
이 대출은 다달이 갚는 빚이 아니다. 원금은 평생 계좌 안에서 수익을 낳고, 이자는 수익에서 자동 납부되며, 정산은 계좌를 정리하는 마지막에 한 번이다. 그때 회수된 원금은 다시 다음 세대의 종잣돈이 된다. 몰수가 아니라 출자로, 시혜가 아니라 대출로, 참여할수록 함께 커지는 구조다.
 
둘째, 누가 굴리는가. 개인에게 떠넘기면 격차가 반복된다. 개인의 투자금을 국부펀드 형태로 맡아 연 7~9%를 추구하는 '국민자산펀드'를 세우자. 관리와 책임은 공공이 지고, 운용은 민간의 전문성이 맡되, 정치의 손은 닿지 않게 독립시킨다. 
 
셋째, 20년 뒤에나 열매가 맺힌다면 그동안은 어떻게 사나. 배당을 '자산의 5%'라는 비율로 정해두면 목표 전에도 자산이 불어나는 만큼 배당이 자라 약관대출이나 선배당 형태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5년 뒤부터 혜택이 가능하고 20년 뒤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다.
 
속도를 더 내는 길도 있다. 순자산 1억원에 이른 사람에게 추가로 대출해서 운용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대출 금리와 수익률의 차이만큼 자산이 더 빨리 불어나, 20년 안에 월 200만원 이상도 바라볼 수 있다.
 
김종민 무소속 의원이 지난 5월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세종의사당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 발표 및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인이 못 하는 걸 하라고 공공이 있는 것
 
빚을 내서 투자하라니 위험하지 않은가. 그런데 대기업과 빅테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규모 차입으로 부를 불린다. 레버리지는 자본주의의 기본 문법인데, 대기업은 쓰고 보통 사람은 쓰지 말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개인이 홀로 뛰어드는 '빚투'는 위험하다. 그러나 공공이 장기 빅펀드를 만들어 분산투자, 지출 준칙, 부채 상한으로 안정성을 갖추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캐나다 연기금이 바로 그렇게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익을 쌓는다. 이때 늘어나는 부채도 소비하려고 빌리는 돈이 아니라 수익을 낳고 담보가 확실한 부채다. 대기업만 쓰던 부의 문법을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 설계를 맨땅에서 시작할 필요도 없다. 지렛대가 이미 있다. 퇴직연금이다. 지난해 말 적립금이 501조원을 넘어섰지만, 각자도생 운용 탓에 10년 수익률이 연 2%대에 갇혀 있다. 지금 추진되는 기금화는 방향이 국민자산제와 같다. 둘을 연계하자.
 
2030에겐 매달 쌓이는 적립분이 추가 납입이 되고, 3040은 이미 쌓인 적립금이 1억 출발 자산의 일부가 된다. 5060은 연 2%가 7%로 바뀌고 '자산의 5%' 평생 배당의 길이 열린다.
 
국민자산제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자산은 가진 자의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깨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제가 아니다. 국가는 믿을 만한 플랫폼을 깔고, 이용은 각자의 선택이다. 시범 사업으로 시작해 10년의 성적을 쌓은 뒤 넓히면 된다.
 
문은 단계적으로 열면 된다. 불안이 가장 큰 2030부터 시작하고, 다음은 갓 태어난 아이들과 청소년이다. 2030의 앞날이 든든해지면 그 부모인 5060의 짐이 가볍고, 아이의 미래가 보장되면 3040이 한숨 돌린다. 국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매년 100조원씩 조성하면 10~15년 후부터 대부분의 중산층·서민이 국민자산소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승자독식의 블랙홀은 부를 소수에게 고이게 한다. 국민자산제란 그 고인 부를 다시 모두에게 흐르게 하는 '자산의 순환'이다. 나누어 끝나는 분배가 아니라 돌고 돌아 다시 커지는 순환, 소수의 자산소득을 모두의 자산소득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제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 남는다. 대전환 뉴딜의 미래 투자는 전략투자, 일자리투자, 국민자산투자 세 축이다. 거기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
 
대전환 뉴딜 연재 순서
 
1. 기업의 성공은 국민의 성공으로 이어지는가
- 왜 대전환 뉴딜인가, 승자독식 블랙홀, 3겹의 대전환, 초격차 민생, 정치의 일
 
2. 대전환 뉴딜, 어떻게 할 것인가
- 미래전략, 연결과 순환, 3대 미래투자, 새로운 돈, 새로운 국가
 
3. 대한민국은 계속 벌 수 있는가
- 전략투자, AX, GX, HX
 
4. 일자리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 일자리 대전환, 지능산업 일자리, 숙련의 시간, 활동소득
 
5. 근로소득이 흔들리면, 무엇으로 사는가
- 국민자산제, 자산소득 대중화, 농지개혁과 자산개혁
 
6.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 미래투자기금, 세금이 아닌 출자, 새로운 사회계약
 
7. 국가의 일, 시민의 일
- 전략국가, 스마트 국가, 스마트 민주주의
 
김종민 무소속 의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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