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보도블록 하나가 살짝 들떠 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약속이나 한 듯 반걸음씩 옆으로 비켜 걷는다. 오래된 도시는 이렇게 자신의 결함을 사람의 몸에 새겨 기억하게 만든다. 로봇에게 다리가 있다고 해서, 로봇이 이 도시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다리를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그 길의 폭과 굴곡과 사람의 흐름을 읽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두 편의 연구가 바로 이 질문, 로봇이 도시를 걷기 위해 정말로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각기 다른 자리에서 캐물었다.
2025년 11월에 관련 연구를 공개한 스웨덴 KTH 왕립공과대학교(KTH Royal Institute of Technology) 연구팀은 실제 배달로봇과 비슷한 속도로 걷는, 센서를 잔뜩 단 연구용 로봇을 스톡홀름 캠퍼스의 길에 내보냈다. 목적은 배달이 아니라 관찰이었다. 안전을 위해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이 작은 연구용 로봇은 캠퍼스 곳곳의 길을 반년 가까이 오가며 101차례 주행했고, 900개 구간의 데이터를 모았다. 로봇은 전방 보도의 유효 폭을 초당 한 번씩 측정했고, 노면의 요철과 불균일성, 경사까지 함께 산출했다. 동시에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속도와 밀도, 속도 변동과 경로 이탈 같은 보행 특성도 기록했다. 흥미로운 발견은 정작 로봇 자신의 움직임에서 나왔다. 로봇이 천천히 지나간 구간은 대체로 사람들도 천천히 걸은 구간이었다. 로봇은 그저 자기 갈 길을 갔을 뿐인데, 그 속도만으로도 그 구간이 걷기 편한 곳인지 아닌지가 드러난 셈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모은 기록을 분석해, 걸음걸이 패턴이 비슷한 구간들끼리 세 무리로 묶어 보았다. 속도 변동과 방향 전환, 경로 이탈이 모두 적게 나타난 기록은 대체로 폭이 넓고 한적한 보도 환경과 맞닿아 있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좁은 길에서는 속도 변동이 유독 크게 나타났고, 보행자가 가장 밀집한 환경에서는 잦은 방향 전환과 경로 이탈이 두드러졌다. 길의 폭과 주변 공간 조건이 사람이 몰리는 정도와 걷는 방식의 차이와 연결될 수 있음을, 로봇이 수집한 데이터가 보여준 셈이다. 로봇이 걷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이렇게 드러난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봇이 도시에서 마주하는 문제는 길에만 있지 않다. 로봇이 사람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따라서도 사람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대만 국립성공대학교(National Cheng Kung University) 연구팀이 2026년 4월 공개한 논문은 바로 이 찰나의 순간을 파고든다. 연구팀은 로봇 한 대와 참가자 한 명이 일대일로 마주치는 실험을 반복하며, 두 존재 사이의 최소한으로 예측되는 충돌시간과 최소거리를 비롯한 여섯 가지 운동학적 변수를 측정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스스로 느낀 편안함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분석한 것이다. 여섯 변수 가운데 편안함과 가장 관련이 깊었던 것은 로봇이 사람과 부딪히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다만 이 변수 하나만으로는 사람이 편안한지 아닌지를 정확히 맞히기 어려웠다. 여섯 변수를 모두 합쳐 하나의 지표로 만들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복합 지표가 '이 사람은 편안하다'고 판단했을 때, 실제로 그 사람이 편안했을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약 4배 가까이 높았다.
이 연구가 확인한 것은 간단하다. 로봇이 사람과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빠르게, 어떤 타이밍으로 스쳐 지나가는지, 이 세 가지를 함께 보면 그 사람이 '편하다'고 느꼈는지 '불편하다'고 느꼈는지를 꽤 정확히 맞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건 좁은 복도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로봇이 걷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여기서 드러난다. 길뿐 아니라 곁을 스치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두 연구는 로봇이 도시를 걷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각각 다른 자리에서 캐물은 셈이다. 하나는 로봇이 매일 지나는 길 자체가 갖춰야 할 조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로봇이 사람 옆을 스칠 때 갖춰야 할 조건이었다. 방향은 다르지만, 둘 다 같은 사실을 증명한다. 로봇은 이제 무엇이 걷기를 힘들게 하고 무엇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그 조건들을 스스로 헤아릴 수 있는 눈과 감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건 작은 성취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봇에게 길의 결함이나 사람의 감정은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제는 숫자로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이 됐다.
필자가 보기에 정작 중요한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로봇이 걷기 위한 조건을 이만큼 알게 됐다면, 그 앎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금 이 두 연구의 결과는 각각 논문 한 편, 데이터 한 뭉치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길의 결함을 읽어낸 데이터가 실제로 그 길을 고치는 데 쓰이려면, 로봇을 운영하는 기업과 도시 행정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을 통로부터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법을 계산해낸 모델이 실제로 로봇의 움직임을 바꾸려면, 그 모델이 실험실 밖 진짜 거리에서 다시 검증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봇이 사람과 부딪히거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먼저 정해져 있어야 한다. 기술이 이미 갖춘 것과 도시가 아직 갖추지 못한 것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로봇이 도시를 걷기 전에 반드시 메워야 할 조건이다.
우리나라 대학가와 신도시에도 머지않아 이런 로봇들이 오갈 것이다. 그때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로봇의 성능이 아니다. 로봇이 매일 쌓는 데이터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받아 쓸 것인지에 관한 원칙이다. 그리고 로봇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실제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이 두 가지가 마련되지 않은 채 로봇만 거리로 나온다면, 로봇은 길의 결함도 알고 사람의 마음도 계산하면서도 정작 걷지 못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로봇이 도시에서 걸어다니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답은 로봇 안에 있지 않다. 좋은 다리와 정교한 센서는 이미 갖춰졌다. 남은 조건은 로봇이 배운 것을 사람이 받아 적고, 사람이 만든 제도가 로봇의 걸음을 다시 다듬는 일이다. 그 주고받음이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로봇도 결국 자신이 지나온 길의 결함을 몸으로만 기억한 채, 그 기억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하고 다시 같은 길 위에서 발을 멈출 뿐이다. 로봇은 걸을 준비가 되었다. 로봇을 걷게 할 조건은 사회가 더 정교하게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