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후유증을 뒤로하고 낮 길이가 짧아지면서,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에 반가운 손님들의 날갯짓 소리가 퍼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남해안 갯벌은 장거리 여행에 지친 도요물떼새들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는 최고의 휴게소이자 에너지 충전소지요. 9월에 찾아와 11월 초까지 머물며 남반구로 떠날 준비를 하는 수많은 나그네새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경이로운 논스톱 비행 기록을 가진 '큰뒷부리도요'(Bar-tailed Godwit)입니다.
큰뒷부리도요가 물이 빠진 서천 갯벌에서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큰뒷부리도요는 마도요보다는 조금 작지만, 도요물떼새 중에서는 비교적 덩치가 큰 편(몸길이 약 37~41cm)입니다. 현장에서 이들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위로 살짝 굽어 올라간 기다란 부리입니다. 기저부는 붉은 핑크빛을 띠고 끝은 검은색을 자랑하지요.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자주 혼동되는 흑꼬리도요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해집니다.
흑꼬리도요는 부리가 똑바로 뻗은 일직선이지만, 큰뒷부리도요는 끝이 위로 슬쩍 휘어 있습니다. 또한 날아오를 때 흑꼬리도요는 꼬리 끝에 선명한 검은 띠가 있고 날개에 넓은 흰 선이 드러나는 반면, 큰뒷부리도요는 꽁지깃에 살구색과 갈색의 잔물결 줄무늬가 촘촘히 박혀 있고 날개 선이 밋밋합니다. 등과 허리 부위 역시 흰색이 등 위쪽까지 깊게 올라와 있어 비행 모습만으로도 두 종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을철 우리 갯벌을 찾는 큰뒷부리도요는 화려했던 붉은색 여름깃을 벗고 수수한 회갈색 겨울깃으로 갈아입는 중간 단계입니다. 특히 이 계절에는 올해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첫 남행길에 오른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유조들도 섞여 있어 이들의 신기한 생존력을 실감케 합니다.
큰뒷부리도요의 진짜 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동경로와 비행 능력에 있습니다. 이들의 주요 번식지는 북극권에 가까운 알래스카 서북부 툰드라와 시베리아 동북부 습지입니다. 여름철 툰드라의 풍부한 곤충과 풍성한 먹이를 먹고 새끼를 키운 뒤, 날씨가 추워지면 월동지인 호주와 뉴질랜드, 태즈매니아 섬을 향해 남하합니다. 과거에는 흑꼬리도요(E7 개체)가 기록한 1만2000km 비행이 최고 기록으로 여겨졌으나, 이 기록을 깨뜨린 것이 바로 큰뒷부리도요입니다. 2020년과 2022년 위성 추적 장치를 단 큰뒷부리도요(4BBRW 등)가 알래스카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횡단하여 뉴질랜드와 태즈매니아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는 대기록을 세웠지요. 무려 11일 동안 단 한 번도 물에 내리지 않고,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1만3500km가 넘는 바다를 연속 비행한 것입니다.
큰뒷부리도요 가족이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남반구로 남하하고 있다.
하지만 가을 남행길과 달리, 봄철 남반구에서 북반구 번식지로 돌아올 때는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EAAF)를 따라 반드시 한반도 황해 갯벌을 거쳐 갑니다. 가을철에도 일부 개체군이나 어린 새들은 서남해안 갯벌에 들러 뱃속을 영양분으로 든든히 채운 뒤 다시 태평양을 건너는 여정에 오릅니다. 지금 우리 서남해안에서 보이는 녀석들은 바로 위의 경우이지요.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를 이용하는 큰뒷부리도요의 전 세계 개체수는 약 30~35만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아 보이지만, 최근 학계와 국제 보전 단체에서는 큰뒷부리도요의 개체수 감소세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근 조사와 기후변화 관련 뉴스에 따르면, 북극 툰드라 번식지의 기온 상승으로 인한 생태계 불균형, 그리고 이동경로상에 있는 중간 기착지 갯벌의 매립과 훼손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쉼터가 사라지면서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지방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개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다행히 최근 한국의 서남해안 일부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고 보호구역이 확대되면서, 이들의 중간 기착지 여건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옵니다.
큰뒷부리도요의 위대한 생명의 여정이 끊이지 않으려면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번식지인 미국(알래스카)과 러시아, 중간 기착지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월동지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잇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을 통한 국가 간 공동 조사와 보호구역 네트워크 강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 서남해안 갯벌은 단순히 흙과 물이 섞인 땅이 아니라,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작은 새의 생명을 이어주는 '지구적 생명선'입니다. 가을철, 갯벌 위로 차오르는 들물(밀물)에 맞춰 통통하게 살을 찌우며 태평양을 건너갈 준비를 하는 큰뒷부리도요들의 힘찬 날갯짓을 응원하며, 이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사진= 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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