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 27)소소하게 즐겨야 오래간다. 술도, 사랑도.
2026-09-14 11:11:25 2026-09-14 11:11:25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2026 부산국제주류박람회(BILIE : Busan International Liquor & Ingredients Expo)에서 제일 실망스러운 맥주는 일본 사이타마현의 브루어리 코에도였다. 늘 평작의 맛을 주고 역시 이건 괜찮아, 하는 반응을 얻어낸 것은 통영 맥주 라인도이치 브루어리였다. 가격도 좋았다. 6000원대였다. 코에도의 IPA 라인 중 하나인 ‘채엽(이로하)’은 350ml 캔이 만원을 훌쩍 넘겼다. 시즌 한정판이라지만 이 가격대라면 대중화는 어려울 거라고 봤다. 게다가 도수도 5.5%에 불과하다. 한 모금 넘긴 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약해. 너무 약해.
 
IPA 맥주는 어디서나 다소 비싼 편이다. 그래서 잘 안 팔린다. IPA의 가성비는 도수에서 나온다. 도수가 세서, 한두 잔으로 취기를 느낄 수 있으면 가격이 견딜 만한 것이다. ‘테라&처음처럼’ 조합으로 소맥을 마실 때는 이만원대는 써야 술을 먹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IPA 7도 정도를 마시면 두 잔이면 취기가 온다. 그러니까 IPA는 도수가 좀 높은 것을 고르는 게 맞다. 예를 들어 몇 년 전부터 세운대림상가 3층 공구상들 사이로 ‘힙’한 맥주펍과 카페들이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끽비어컴퍼니’가 운영하는 ‘끽’이란 이름의 탭 하우스이고 거기서 마실 수 있는 맥주들이 그렇다. ‘끽 비어’의 대표주자는 ‘꿀꺽’이다. 다만 이건 라거 종류라 IPA 덕후라면 그다지 선호하는 장르의 맥주는 아니다.
 
‘회복과 연대의 장, 국경 없이 술로 어울리는 잔치’를 주제로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2026 부산국제주류박람회 행사장 모습이다.(사진=오동진)
 
탭 하우스 끽에서는 미국 웨스트코스트 스타일의 IPA ‘홒(HOP)’,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IPA (헤이지) ‘팡팡’이 좋다. ‘홒’은 6.4도이다. IPA지만 묵직함보다는 가볍고 청량함이 특징이다. 을지로4가를 다니며 뭘 먹기 전에(예를 들어 오장동 함흥냉면 같은 것) 가볍게 먼저 목을 축이고 가기에 적합하다. ‘팡팡’은 7.6도이다. 두 잔 마시면 알딸딸해진다.
 
토요일 주말의 낮술 순례는 이런 행보가 괜찮다. 탭 하우스 끽에서 IPA를 한두 잔하고 이제는 뭔가 먹을 것이 땡길 때쯤 상가 계단을 내려가 을지로4가로 살금살금 걸어간다. 한여름 지옥 더위에는 절대 불가능이지만 가을이 예고되는, 살랑살랑 바람 부는 날이면 한산한 도심을 지나 ‘오장동 흥남집’ 같은 함흥냉면 집으로 간다. 오장동 함흥냉면 집의 대명사는 말 그대로 ‘오장동 함흥냉면’이지만 거기는 대기업형이어서(평양냉면의 독점 주자들인 필동의 ‘필동면옥’, 장충동의 ‘평양면옥’, 강남 신사동의 ‘강남면옥’처럼) 그게 살짝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에겐 거길 휙 지나쳐 보란 듯이 가는 곳이 흥남집이다.
 
이미 배속에는 도수 높은 맥주 한두 잔이 출렁대는 상황이다. 흥남집에는 회냉면과 물냉면, 심지어 섞어냉면도 있다. 둘이 가서 회 냉면은 하나만, 수육 접시 하나, 테라 한 병, 처음처럼 한 병을 차려 놓으면 주말의 진수성찬이 완성되며 그걸 다 먹고 마실 때쯤이면 가을날 토요일 오후의 해가 서서히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술상의 주도는, 언젠가 이 연재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강 한잔’을 먼저 한 다음, 테라&처음처럼 조합의 소맥으로 이어가야 한다. ‘강 한잔’은 바짝 냉장된, 차가운 소주를 잔에 찰찰 따라서 원 샷으로 마시는 것이다. 그렇게 위벽을 소주 한잔으로 ‘코팅’한 후 나머지 술을 마시면 나가려고 일어설 때 살짝 비틀댈 수 있지만 화장실 한번 들렀다 가면 일상을 움직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부산 주류박람회에서 벡스코 같은 ‘거대한’ 공간의 홀 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살짝이 아니라 꽤 취하게 된다. 여기서는 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산에 앞서 6월에 열리는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에서는 코엑스 홀 구석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띈다. 화장실에는 여지없이 토사물들이 보이기도 한다. 한잔 한잔 먹는다고 얕잡아 보다가 가랑잎에 옷 젖는다. ‘퍼질러’ 앉아서 먹는 게 아니라며, 살살 돌아다니면서 이 부스, 저 부스에서 먹는다고 해서 안 취하는 것이 아니다. 큰코다친다.
 
부산 주류박람회 때가 그렇다. 라인도이치 브루어리의 IPA로 엔진을 가동한 알코올 두뇌는 좀 더 센 것, 좀 더 맛있는 맥주를 찾아 순례를 시작하게 만든다. 거기다 양도 좀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코에도처럼 350ml 말고 500ml짜리를 찾게 만든다. 그때 걸리는 것이 세븐브로이의 ‘7’이다. 옛날 스타일의 병맥주이다. 본래 세븐브로이에서 나오던 IPA 도수는 5.5도였는데 ‘7’은 7도다. 맛이 있고 용량도 나쁘지 않아 중간쯤 달리기에 적당하다. 부산 주류박람회의 맥주 스타였던,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고릴라 브루잉의 신제품 ‘올드스쿨’은 ‘맥덕’들, 곧 맥주 덕후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도수(ABV)는 7도, 쓴 맛(IBU)은 50 이상이었다. 맛없는 맥주를 마시다가 이런 IPA를 만나면 눈물이 살짝 돈다. 사는 맛이 느껴진다. 취했다는 얘기이다.
 
2026 부산 주류박람회의 특징은 예년에 비해 안줏거리를 비교적 잔뜩, 무엇보다 싸게 내놓았다는 것이다. 모둠회를 팔기도 했고 소시지구이를 산처럼 쌓아 놓고 대량으로 방출하기도 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주류박람회를 찾는 부산의 ‘젠지’들이 술보다 안주를 더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놈의’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술장사하러 나온 주류 판매자들은 살짝 위기의식을 느낄 법한 대목 같은 것이었다. 주류박람회는 주(酒, Liquor)가 먼저이지 류(Ingredients)가 우선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청춘을 부어라 마셔라 살았던 ‘노땅’들의 시선일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인과 친구 둘이 다니지 ‘떼거지’로 다니지도 않는다. 이른바 물장사, 알코올 산업의 방향도 바뀌어야 할 때이다. 이미 바뀐 지 한참 오래되었을 것이다. 늙은이들이여. 젊은이들에게 술을 강권하지 말지니.
 
영화 <사이드웨이>의 주인공은 와인 애호가인 영어 교사 마일즈(폴 지아매티)디. 그는 이혼의 후유증을 와인으로 달래는, 소심하고 무미건조해보이는 남자이지만, 완벽한 와인을 맛볼 때만큼은 활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복습을 좀 해 볼 요량으로, 맥주의 3요소 정도는 알고 맥주를 마시는 게 좋다. 일단 주원료인 보리 맥아(일명 몰트라고 하는 것. 몰트위스키라 하면 보리가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가 있고 전량 수입되는 홉(쓴맛을 내는 싹으로 위도 35도~55도 사이의 지역에서만 자란다. 한국 서울은 대략 북위 37도)과 효모가 있다. 맥주의 맛은 홉과 효모의 양을 얼마나 ‘때려’ 넣고 얼마나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릇 모든 술은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잘난 체’를 하는 순간 맛과 멀어진다. 와인을 마시면서 바디감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은 적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2004)에서 마일스(폴 지아마티)가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인생의 쓴맛을 겪는다. 헤어졌어도 (마일스로서는) 잊지 못하는 전 부인은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행복하게 임신했고 자기가 쓴 소설은 번번이 출판을 거절당한다. 마일스는 평소 애지중지하던, 보르도 생테밀리옹의 명품 와인이라는 ‘사토 슈발 블랑 1961년산’을 편의점에서 가져온 종이컵에 콸콸 따라서는 벌컥벌컥 마신다. 이 영화 이후 일부 와인 마니아들은 벌컥벌컥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른바 명품이니 몇 년산이니 하는 얘기는 자제하게 됐다. 술은 그런 것이다. 인생이 별거 아닌 것처럼, 무엇보다 삶의 욕망이라는 것이 다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와인이든 맥주든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세운대림상가 3층 공구상 옆에는 소요서가라는 작은 철학서점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산책로를 거닐며 제자들을 가르친 데서 유래한 ‘소요학파’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슬슬 걸어 다니면서 철학을 얘기하자는 취지다. 철학이란 것도 사실 별거 아니라는 얘기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철학박사 윤상원씨가 만든 서점으로 다 예감하듯이 장사는 잘 안 되는 서점이다. 요즘 철학책을 읽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힙지로’ 한가운데에서 2021년 7월쯤(극장가에는 드니 빌뇌브의 <듄> 열풍이 불었다)에 문을 연 이래 5년 넘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말 오후 소요서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끽’ 탭 하우스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오장동에 가서 함흥냉면에 소맥을 마시면 그래도 인생은 살아갈 만하다(살 만하다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매사 거창할 필요가 없다. 소소하게 즐기고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면 된다. 인생은 훅, 한 방에 가는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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