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광활하게 펼쳐진 황톳빛 매립지 위로 지반조사용 시추기가 연신 굉음을 토해냅니다. 로봇 제조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AI 수소시티, 태양광 발전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현대자동차그룹이 둥지를 틀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7공구 조성 작업이 한창입니다. 누런 흙먼지 너머로 펼쳐진 현장에는 아직 거대한 빈 땅이 대부분이지만 과거와는 분명 다른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기업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고 기반시설 조성이 속도를 내면서 새만금은 지난 35년간의 ‘희망고문’ 타이틀을 벗어던지는 모습입니다.
지난 10일 전북 부안군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서 만난 문성요 새만금개발청장은 지금의 새만금을 두고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에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는 <뉴스토마토>의 질문에는 “고민보다도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오랜 시간 ‘희망고문’으로 불리던 새만금 개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지난 10일 전북 부안군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서 만난 문성요 새만금개발청장이 새만금 개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새만금개발청)
9조원 품은 7공구…로봇·AI 데이터센터까지
고민보단 성과를 위한 실행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새만금은 33.9㎞ 방조제와 409㎢(여의도 면적의 144배) 간척지의 거대 국책사업입니다. 이 거대한 땅에는 현대차그룹 9조원 투자, 정부 예산 2222억원, 기업 투자지원 265억원, 재생에너지 10GW, 169.6㎢ 매립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입주할 국가산단 7공구는 지난 2025년 6월 매립을 완료한 뒤 올해 3월 부지 조성을 위한 본공사에 착공했습니다. 7공구 전체 면적(약 130만㎡) 중 현대차그룹은 1단계로 12만 평(약 40만㎡)을 우선 활용해 국내 최초의 로봇 전용 제조 공장과 AI 기반 지원 시설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투자안은 총 5개 핵심 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5조8000억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는 최첨단 GPU 5만장을 투입해 자율주행차 및 로봇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처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기가와트급 태양광·수전해 플랜트의 경우는 1조3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설비와 200MW급 수전해 시설을 결합해 연간 2만톤의 그린 수소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로봇 제조 클러스터·AI 수소시티는 8000억원 수준으로 연간 2만대 이상의 산업·물류용 로봇 양산 및 도시 전체에 피지컬 AI를 적용합니다.
현장 관계자는 “구간별 시추 조사를 통해 상부 구조물을 안전하게 지탱할 암반층 깊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있다. 현대차라는 대형 앵커기업이 들어서는 만큼 향후 조성될 8공구까지 유관 협력사들의 연쇄 입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1일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 일원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7공구에 지반조사용 시추기가 연신 굉음을 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업 지원 예산 477%↑…실행력에 무게
새만금의 산업 대전환을 뒷받침할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도 안정적으로 가동 중입니다. 예컨대 1575억원을 투입해 주민 참여형으로 조성한 새만금 육상 태양광 발전소(1~3구역)의 경우 107만평(축구장 495개 규모) 부지에 총 300MW급 시설 용량을 갖췄습니다.
이곳 생산 전력만 연간 426GWh로 군산시 전체 주택 연간 소비량(422GWh)을 상회하는 규모입니다. 154kV 승압을 거쳐 새만금 변전소로 송전돼 산단 입주 기업들의 RE100 달성을 돕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합니다.
실행력 확보를 위한 정부 예산도 늘었습니다. 2027년도 새만금개발청 예산안은 2222억원으로 올해보다 3.4% 증가했습니다. 기업 투자지원과 관련한 예산이 올해 46억원에서 내년 265억원으로 477% 증액했습니다.
문 청장은 기업이 실제 사업을 시작하려면 산업용지뿐 아니라 전력과 용수, 교통 등 기반시설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새만금의 정책 중심이 ‘기업을 유치하는 것’에서 ‘기업이 실제 투자하도록 만드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겁니다.
지난 10일 전북 김제시 새만금사업지역 내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 현장에서 관계자가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역 상생'…전력계통·교통망은 과제
내년 예산에는 7만평 규모 장기임대용지 조성, 로봇 클러스터,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DRT) 등이 새로 반영됐습니다. 기본계획 변경안에 따라 매립 면적도 기존 240.5㎢에서 169.6㎢로 조정하고 12.2㎢는 전략적 유보지로 남깁니다.
산업거점도 로봇·AI, 첨단기계, 수소, RE100 등 4개로 재편합니다. 공공주도 개발로 전환해 기업 수요에 맞춰 필요한 용지와 기반시설을 우선 공급하고 169.6㎢ 매립은 10년 내 추진한다는 구상입니다. 재생에너지는 7GW에서 10GW로 확대하고 동서·남북도로와 새만금-전주고속도로를 기반으로 지역 간 연결도로와 신항만, 인입철도도 단계적으로 확충합니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도시 기반도 갖춥니다. 6.25㎢ 규모 수변도시는 현재 1공구 공정률이 56%이며 2·4공구도 본공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단독주택용지 67필지와 근린생활시설 2필지 공급을 시작했고 AI 특화 시범도시로의 전환도 추진합니다.
다만, 전력계통과 교통 과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새만금은 재생에너지 발전 규모를 7GW에서 10GW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현행 구체적 사업계획에 따라 계통이 확보된 물량은 약 5GW 수준입니다. 나머지 5GW는 정부의 송전망 구축계획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확보한다는 방침입니다.
교통 역시 DRT를 도입하지만 내년 편성된 예산은 4억원에 불과합니다. 이 와 관련해 새만금청 측은 본격적인 대중교통 운영이 아닌 초기 실증에 필요한 예산인 만큼, 운행 가능성과 운영방식을 검증한 뒤 현대차그룹의 입주가 본격화될 2029년을 목표로 교통체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기업 투자를 뒷받침할 전력과 사람이 실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 망을 적기에 갖추느냐가 새만금 개발의 최대 성과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 청장은 새만금 내부 개발을 넘어 전북권 주변 도시들과의 광역적 성장 전략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도로망 연결 등 지자체 간 상생 협력 사업을 발굴해 지역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낸다는 구상입니다.
지난 11일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새만금북로 일원에 새만금 태양광 전경이 펼쳐져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새만금=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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