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Reddit)’에 올려진 GLP-1 관련 콘텐츠들(사진=Reddit 화면 캡처)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의료 모니터링의 혁신: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온라인 커뮤니티가 AI 기술과 결합하며, 신약의 숨겨진 부작용을 신속하게 포착하는 강력한 도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만 및 당뇨 치료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약물의 숨겨진 부작용 가능성이 인공지능(AI)을 통해 새롭게 제기됐습니다.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와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로 대표되는 이 약물들은 탁월한 체중 감량 효과로 ‘기적의 비만약’으로 불리지만, 정식 임상시험이나 규제 당국의 문서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환자들의 불편함이 온라인상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Penn) 공학 및 응용과학부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헬스(Nature Health)에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임상시험의 사각지대, 생리 불순과 오한
연구팀은 최근 5년 이상 축적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게시물 40만여 건(사용자 약 7만 명)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에 잘 알려진 위장 장애(구역질 등) 외에도 추가적인 연구가 시급한 두 가지 주요 증상군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불규칙한 월경주기 등 생식기계 증상과 오한, 안면 홍조와 같은 체온 관련 불만입니다.
펜실베이니아대 컴퓨터 및 정보과학(CIS) 교수이자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인 샤라트 찬드라 군투쿠(Sharath Chandra Guntuku) 박사는 “구역질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부작용이 데이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우리의 분석 방법이 실제 신호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라며,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털어놓은 미보고 증상들은 임상의들이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단서”라고 강조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부작용을 언급한 사용자의 약 4%가 생리혈 과다, 부정 출혈 등 월경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발열과 유사한 증상이나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빈도도 임상시험 보고 기준을 상회할 정도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제나 쇼 트로니에리(Jena Shaw Tronieri) 체중 및 식이장애 센터 수석 연구원은 “이 약물들은 다양한 호르몬 조절을 돕는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약물이 이러한 증상을 직접 유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생리 변화와 체온 변동에 대한 환자들의 호소는 체계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AI가 이끈 ‘소셜 리스닝’의 혁신
이러한 발견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은 단연 인공지능(AI)입니다. 환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임상의들이 사용하는 ‘국제표준의학용어(MedDRA)’로 변환하는 작업은 과거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GPT, 제미나이(Gemini)와 같은 대형언어모델(LLM)의 등장으로 전례 없는 규모의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닐 세갈(Neil Sehgal) 박사과정 연구원은 “LLM 덕분에 이전에는 달성하기 어려웠던 표준화 수준을 유지하면서, 방대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훨씬 빠르게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군투쿠 박사는 “임상시험은 안전성을 검증하는 '골드 스탠다드(Gold Standard)'지만 구조적으로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라며 “AI 기반 분석은 특정 약물이 틈새시장에서 주류로 순식간에 떠오를 때 그 공백을 메우는 빠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상관관계 한계에도 신약 감시 새로운 지평 열어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레딧의 사용자층이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에 편중되어 있고, 미국 거주자가 대다수라는 점에서 글로벌 GLP-1 사용자의 보편적 경험을 대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이번 연구 결과는 증상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일 엉거(Lyle Ungar) CIS 교수는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는 일종의 동네 소문망(grapevine)과 같다. 환자들은 진료실이나 공식 보고서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경험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라며, "임상시험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지만, 정작 환자들이 일상에서 가장 우려하는 증상들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가 의학계와 연구자들이 온라인상의 환자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향후 레딧을 넘어 틱톡(TikTok) 등 다른 소셜 플랫폼과 비영어권 커뮤니티로 분석 범위를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새로운 다이어트 유행이나 느슨하게 규제되는 펩타이드 주사제처럼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건강 트렌드 속에서, AI와 결합한 소셜 리스닝은 환자의 실제 경험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전망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