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국가산업단지가 살아남으려면 구조적인 변화가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국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분 보완 정책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생태계 자체를 변화시킬 판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인데요. 전문가들은 사람과 기업, 인공지능(AI) 전환, 행정·재정 체계를 하나의 틀로 묶어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22일 산업단지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국가산단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공감하며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인력과 정주 여건, 앵커기업 생태계, AI 전환, 행정·재정 체계 전반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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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이 없다…정주여건부터 손질해야
가장 먼저 꼽힌 건 사람 문제입니다. 정인화 산업단지경제연구소장은 청년층이 산업단지를 떠나는 이유를 임금만이 아니라 주거와 사회적 인식, 교육이 얽힌 복합 문제로 짚었습니다. 정 소장은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산단에 있는 제조기업에 취업한 뒤 5년~10년 근무했을 때 집을 주거나 산단 주변 우선 분양권을 주고 근무하는 동안은 융자로 전환하고 퇴직하면 갚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했으면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정 소장은 "청년들이 가장 걱정하는 집 문제를 해결하면 굳이 수도권에서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1980~1990년대에 이런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산업단지 입주 근로자에게 인근 주택을 우선 공급할 수 있는 규칙을 마련했습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강제할 권한이 없고 민간사업자의 자율 신청에 맡겨져 있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 소장의 지적입니다. 그는 "임대형 기숙사 제도가 있어도 사업시행자에게 지원하는 별도 금융 수단이 없다 보니 민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을 조달해 시장 가격을 반영해 짓게 되고, 결국 수요가 있는 수도권에만 투자가 몰리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기업 있어야 중소기업도 산다
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앵커기업 부재가 핵심 병목으로 지목됐습니다.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호남과 영남 지역 국가산단에서 앵커기업 부재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짚었습니다. 양 부지사는 "이쪽 지역에는 앵커기업들이 인력이든 접근성이든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기회발전특구 등 특구로 지정됐을 때 세금이나 인력 채용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돼야 앵커기업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양 부지사는 앵커기업의 역할에 대해 "앵커기업이 들어오면 그와 관련된 1차 벤처, 2차 벤더 기업들이 부품을 생산해 공급하면서 물류비가 싸지고 산업단지가 살아난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어 "중소기업은 자체 연구·개발(R&D) 인프라가 부족해 시제품 제작과 실증, 인증 관련 인프라가 국가산업단지 안이나 인근에 있어야 생태계가 활발하게 돌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공지능 전환(AX)에 대해서도 "국가가 생산공정과 경영관리 AX 전환을 함께 지원할 수 있는 공급 루트와 예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소기업 중심의 AX 전환 방식을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최정철 인하대 교수는 정부의 제조 AX 정책 방향 자체는 적절하지만 여전히 중앙 집권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최 교수는 "현재 방식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자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중견기업이 먼저 선정되는 구조"라며 "50인 미만 기업은 원청기업과 벤더가 연결된 공급망의 일부이므로 한 기업만 AX로 전환해서는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최 교수는 국가산단 입주 기업의 다수가 50인 미만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책의 기본 단위를 개별 기업에서 산업단지 공동 지원, 원청과 1차~4차 벤더의 동시 전환, 광역정부 책임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생성형 AI는 현장 작업자가 자연어로 생산, 품질, 설비, 안전, 수출 관련 업무를 지원받을 수 있게 해 중소기업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있다"며 "다만 생성형 AI가 제조 AX의 전부는 아니기에 실제 생산공정에서는 머신비전과 예지보전, 로봇, 공정 최적화, 디지털트윈과 연결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광역정부가 공동 데이터 기반과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앵커기업이 데이터 표준을 제공하며, 1·2·3·4차 벤더가 공동 플랫폼을 사용하고 대학과 테크노파크, 산업단지공단이 현장 지원 인력을 공급하는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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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진 관리 체계…막혀있는 재정
행정 체계의 분절도 반복적으로 지적됐습니다. 최 교수는 "대기업 공장은 국가산단에 있고 1차 벤더는 일반산단, 2·3차 벤더는 농공단지나 개별 입지에 있을 수 있는데 행정은 산단 지정 주체와 관리 기관에 따라 분절돼 있다"며 "산업 생태계는 하나인데 관리 체계는 여러 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정과 재정, 국가 전략 기능상의 법적 구분은 유지하되 산업정책과 기업 지원 측면에서는 광역시도 단위로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정 소장은 부처 일원화를 내세웠습니다. 정 소장은 "노후산단 재생사업이나 구조 고도화 과정에서 편의시설 하나를 넣으려 해도 국토부 용도변경을 거쳐야 한다"며 "이런 절차적 중복 규제를 하나의 부처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국토부가 신규 산업단지의 진입 도로 건설 비용을 지원하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예산 집행률이 크게 떨어지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재원 구조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정 소장은 2009년부터 조성된 산업단지 환경개선펀드에 1조3000억원이 출자돼 있지만 특수목적법인(SPC) 사업자에게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도 곧바로 기획재정부로 귀속되는 구조라 재투자가 막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펀드를 해소하지 않고 20년, 30년 운용할 수 있도록 형식적으로만 늘려놨다"며 "기금화해 임대주택과 임대 기숙사, 중소기업 근로자를 위한 편의 공간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내다봤습니다.
홍진기 지역산업입지연구원장은 입주 기업의 기술 경쟁력 자체를 강화하는 사업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홍 원장은 "산업집적지 경쟁력 강화 사업처럼 기술개발을 지원해 주던 사업이 일몰로 종료될 예정"이라며 "국가산단이 살아남으려면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한 R&D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광역지자체 단위 진흥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지원이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동종 유사 업종이 집적된 산단 특성을 살려 클러스터 안에서 맞춤형 R&D를 지원해야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홍 원장은 "기업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수도꼭지를 황금 꼭지로 바꿔도 녹물이 나오면 소용없다"며 근본적으로 입주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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