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11년 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북한 목함지뢰' 폭발 사고의 악몽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 시절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폭발 사고는 대북 확성기 재개와 북한의 포격이라는 '핑퐁 게임'으로 치달으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키웠습니다. 다행히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가까스로 충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남북 연락 채널 자체가 끊긴 데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진 실정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악의 긴장 관계서 극적 타결까지
28일 서부전선 DMZ 내 지뢰 추정 폭발 사고와 관련해 정치권 내 파장은 물론 남북 관계 경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위가 11년 전 박근혜정부 당시 북한 목함지뢰 사건과 유사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사건의 시기도 피해 규모도, 대처 상황도 모두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5년 8월4일 오전 7시35분과 7시40분, 경기도 파주 인근 DMZ에서 북한군이 묻은 목함지뢰로 인해 우리 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오전 7시35분 1차 폭발 이후 7시40분 2차 폭발이 발생한 건데요.
우리 군은 엿새 뒤인 8월10일 오전 9시 국방부 브리핑을 통해 "DMZ에서 수색작전 중 우리 수색대원 2명이 적이 군사분계선을 침범해서 인마살상을 목적으로 매설한 것으로 확실시되는 목함지뢰에 의해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명백한 북한의 군사도발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엿새 만의 조사 결과 발표는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특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박근혜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는데요. 이 같은 비판을 내놨던 게 민주당입니다. 북한군이 DMZ 안으로 들어와 지뢰를 설치한 것에 대한 사전 탐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여당인 새누리당 안에서도 나온 바 있습니다.
북한 지뢰 폭발 사고는 남북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습니다. 박근혜정부는 조사 결과 발표와 동시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2004년 남북 합의로 중단된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11년 만에 다시 가동한 겁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었는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간 배경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포격 도발에 나섰고, 우리 군도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발령했습니다. 북한에선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며 위협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다만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남북이 모두 대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면서 극적인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됐습니다. 결국 같은 달 25일 양측은 공동 발표문을 통해 지뢰 도발에서 시작된 신경전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대화 채널 '부재'…"사과와 재발 방지 요구해야"
현재의 흐름도 11년 전 사고와 비슷합니다. 사고 발생과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 등 유사한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문제는 현재의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라는 겁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극복할 수단이 사라진 상태이기도 합니다.
이재명정부는 윤석열정부와 달리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제거했습니다. 북한과의 국경 지역에서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으며 대북 전단도 중단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은 이재명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나온 북한의 대남 담화에는 "한국과는 마주 앉을 일도 없다"라는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밝히고 9·19 군사합의 복원 의사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기존 노선을 유지했고, 헌법에는 통일 관련 문구를 삭제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2023년 4월 이후 군 통신선에도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 사이에 구체적 소통 창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또다시 DMZ 지뢰 사고가 발생한 건데요. 남북 관계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모양새입니다.
야당에서는 2015년 당시처럼 대북 확성기를 재개해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북 확성기는 북한의 포격으로 이어진 바 있어 남북 관계를 더욱 경색시킬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아직 조사 결과를 살펴야 하지만 북한의 소행이 명확해지면 남북 관계는 소용돌이칠 것"이라며 "이재명정부는 북한에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이번 조사에는 남북 관계에 미칠 파장보다 국민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습니다. 다만 해당 지뢰의 매설 시기에 따라 파장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북한이 최근에 매설한 지뢰라면 남북 관계에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과거에 매설한 지뢰로 인한 사고라면 우리 군의 대응 쪽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겁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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