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관 제청과 임명을 둘러싼 청와대와 조희대 대법원장의 갈등이 충돌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자체의 ‘헌법적 근거’를 문제 삼으며 재제청 거부 의사를 명백히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존에 제청된 후보를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후보추천위원회 구성부터 다시 시작해 새 후보를 제청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는 법조계의 일반적인 전망은 완전히 어긋났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청와대는 제청 후보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명백한 법적 근거 없이 나머지 후보들 가운데 재제청을 요구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함으로써 빌미를 제공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독자적이고 자기 편의적인 주장일 뿐, 어떤 것도 확립된 정설은 아니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특정 후보의 제청을 강제하거나,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자신이 제청한 후보의 임명을 관철할 수단은 없다. 헌법은 양 기관의 의사가 합치하지 않을 경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그 간극을 지금까지 ‘사전협의’라는 관행으로 메꿔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중요한 헌법기관에 대한 헌법의 신뢰를 헌법기관이 앞장서 배반하는 모습이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에 올라타,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겁쟁이(chicken)가 되어 패배하게 되는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는 핸들을 꺾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확신시키는 것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는 순간 패자가 되고, 극단적 위험을 감수하는 비이성이 이성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미치광이 전략’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 현재의 교착 상태는 내년 6월 조 대법원장의 퇴임이라는 출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200일 넘게 공석이었다.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를 단순히 청와대로 공을 넘긴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자신의 퇴로를 끊어버렸고, 대통령이 핸들을 꺾을 명분도 없다. 현재의 교착 상태를 법적으로 정리해 줄 수 있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은 상당한 시간의 소요와 그 결과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해법으로 삼기에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먼저 물러서야 하지만 서로 물러설 여지가 없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의 무한 대치는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는커녕 사법부를 정치적 전쟁터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 헌법기관의 소모적 자존심 싸움 속에서 실질적인 피해를 떠안는 것은 헌법 제27조 제3항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국민들이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던 진짜 어머니의 선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미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사법부 독립을 위한 의기를 충분히 보였다. 그렇다면 이 교착 상태에서 그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임기까지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을 방치하고 얻을 이익이 있는가. 법원을 정쟁의 한가운데 계속 세워둘 이유는 더더욱 없다.
사법부를 정치에서 구해내고 다시 재판하는 법원으로 돌려놓을 1차적 책임은 사법부 수장에게 있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구호가 남은 임기 동안의 재판 정상화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방치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천경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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