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출산’에 아동학대를 묻다)③“위기출산에 ‘아동학대살해’ 기계적 적용 말아야”…법원이 따져야 할 것들
판결문 속 공통분모 ‘임신 거부’…말하지 못한 채 숨기다 화장실서 조산
법원, 징역 6년→3년6개월 등 감경…법정형 하한 벗어난 판결 잇따라
“아동 보호와 산모 처벌은 별개…잘못된 판례의 ‘씨앗’ 만들지 말아야”
2026-09-29 16:56:35 ㅣ 2026-09-29 17:03:56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선고형을 양형 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하한보다 낮은 형으로 정한다.”
 
'위기 출산' 후 신생아를 숨지게 해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모들의 2심 판결문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아동학대살해죄의 감경 영역 권고형 하한은 징역 6년입니다. 그러나 최근 주요 항소심 재판부들은 이 권고형을 깨고, 법률상 최저형인 ‘징역 3년6개월’을 잇따라 선고했습니다. 수혈이 필요할 정도의 과다 출혈과 극심한 탈진, 교제 상대방의 폭력과 사회적 고립 등 산모들이 처했던 상황을 양형에 적극 반영한 결과입니다. 
 
사법부가 양형 기준 권고형을 벗어나면서까지 법률상 최저형을 택하는 이례적인 판결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위기 출산 산모를 일반 아동학대살해범과 같이 엄벌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재판부의 의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참작 사유 인정해 권고 하한 벗어난 형 선고
 
판결문에서 확인되는 피고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임신 사실을 은폐하거나 임신 사실을 거부하는 정황입니다. 피고인 대다수는 임신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지 못한 채 숨기기에 급급하다, 아무런 출산 준비도 의료적 조력도 없이 좁은 화장실 변기나 모텔 방바닥에서 홀로 분만을 해야 했습니다. 
 
지난해 서울고법 형사6-1부(재판장 정재오)가 징역 6년의 1심을 깨고 법률상 최저형인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피고인 A씨는 원룸 화장실에서 조산한 뒤, 신생아를 베란다에 두고 출근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7쪽에 걸친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경위부터, 범행의 경위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A씨는 폭력을 일삼던 전 애인과 헤어진 사이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주변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중절 수술을 예약했으나 수술 나흘 전 임신 7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미숙아가 태어났습니다. 
 
재판부는 “갑작스러운 조산에 무척 무섭고 두려우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정신적, 심리적으로 크게 당황하여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성적,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채 주저주저하다가 그냥 피해자를 원룸에 방치해 놓고 그대로 생계 벌이를 가는 통에 영아가 죽었다고 보인다”며 참작 사유를 명시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모텔에서 신생아를 출산한 뒤 창문 밖으로 떨어뜨려 숨지게 한 사건에서도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남성민)는 징역 6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4년으로 감경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원치 않는 성관계로 피해자를 임신하게 됐다”며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고도 주변에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않은 채, 술에 의존해 현실을 회피하는 태도로 모텔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영아에 대한 생명 침해는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지능지수(IQ) 67로 대처 능력이 제한적이었던 점, 진료를 받지 못해 출산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다 출혈에 대한 공포와 극심한 고통 속에 현실을 외면하려 했던 ‘미필적 고의’였던 점 등을 참작 사유로 인정했습니다.  
 
“아동 보호와 산모 처벌은 별개…나쁜 선례의 씨앗 막아야”
 
현재 하급심 법원에서는 아동학대살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행 학대 행위가 별도로 입증돼야 한다는 ‘순차설’과 방치 행위 자체가 곧 학대이자 살해라는 ‘동시설’이 팽팽히 맞서는 등 혼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피고인 측에 의한 아동학대살해죄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제기되는 등 법 조항 자체의 과잉 처벌을 다투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대법원의 확정 판례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어, 그사이에도 위기 출산 산모들에 대한 기계적 중형 기소는 계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부장판사는 근본적인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그는 “아동의 생명을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과, 고립된 상황에 내몰린 산모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며 “악의를 품고 저지르는 가해 행위와 두려움 끝에 현실을 회피한 방치는 다르며, 아이가 사망했다는 결과만으로 그 행위를 곧바로 ‘살해’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일반적인 아동학대와 분만 직후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은 개념을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며 “대법원의 명확한 판단이 서기 전까지, 하급심이 영아가 숨졌다는 결과에만 매몰돼 아동학대살해죄를 인정하는 판결들이 누적돼 잘못된 사법적 ‘씨앗’이 되는 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19년 4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신 은폐는 제도의 실패…개인 처벌로만 덮어선 안 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제도의 공백을 지목했습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와 정부는 임신 중·후기 임신중단 허용 기준이나 상담·의료 지원 입법을 완전히 손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정보와 공적 의료 지원에서 차단된 취약계층 여성들이 임신중단 시기를 놓치고, 고립 속에서 화장실 출산이라는 파국에 이를 때까지 국가는 철저한 방치했다는 일관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오정원 의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임신 사실을 숨기고 병원을 찾지 않은 행위는 개인이 악해서가 아니라,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사회적 통로가 전무한 상황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봤습니다. 이어 “임신을 숨기다 극단적인 고립 상태에서 분만을 맞닥뜨린 여성의 취약성을 보지 않고, 은폐 행위 자체를 가혹한 처벌의 잣대로만 삼는 것은 구조적 방치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수진 법무법인 혜석 대표 변호사는 “국가가 임신 단계의 여성들을 위한 제도 마련은 방기한 채, 그 결과로 발생한 비극에 대해 법정형 7년 이상의 아동학대살해죄라는 가장 무거운 칼날을 기계적으로 들이미는 것은 입법 취지에도, 형벌의 비례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