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잇따른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시행으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접수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은행이 모기지보험(MCI) 가입 제한, 2주 이상 사전 접수 제한 등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은 은행으로 고객들이 몰리는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출 실행 한 달 전 접수만 승인 '깐깐'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달부터 연말까지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와 전세대출 접수를 잠정 중단했습니다. 또한 지난달 14일부터 다음달 말까지 신규 주담대에 MCI 신규 가입을 제한했습니다. MCI는 주담대와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인데, 이 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 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받을 수 있어 대출 한도가 축소됩니다. 또한 주담대 실행일이 한 달 이내인 대출 신청 건에 대해서는 접수를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농협은행 역시 MCI·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 제한과 더불어 타행 대환대출 취급을 축소하는 등 대출 접수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수도권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6·27 대책, 규제 지역 담보인정비율(LTV)을 40%로 강화한 9·7 대책 등 정부의 추가 규제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대출 조건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는 만큼, 대출 심사 과정에서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은행권은 이를 통해 심사 기간을 늘려 안정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대출 총량 관리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6·27 대책에서 은행권에 올해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치를 기존 대비 절반으로 줄일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5대 은행은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기존보다 약 3조6000억원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각 은행이 접수 기준과 절차를 까다롭게 바꾸는 배경에는 이러한 총량 관리 압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규제가 수시로 변하다 보니 실행일 직전에 접수된 건은 심사 기준 반영이 미비할 수 있다"며 "실무 오류를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각 행별로 자율적으로 접수 제한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이달 초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에 대해 최소 20영업일 전에 접수해야 승인 절차가 가능하도록 내부 지침을 바꾸고, 이를 전산 시스템에도 반영했습니다. 기존에는 2주 전 접수가 일반적이었지만, 심사 기간을 한 달 가까이로 늘린 것입니다.
별도 규제 없는 KB·우리은행 몰려
이와 달리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별도의 대출 제한 조치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두 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대환 대출도 기존 대출 한도 내에서 여전히 취급하고 있으며,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전세대출 접수 제한도 두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담대 금리가 낮고, 대출 심사 지침이 까다롭지 않은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창구로 고객이 몰리고 있습니다.
실제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 최근 주담대 및 전세대출 창구 업무량이 평소의 두세 배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주담대 상품에 대한 문의와 대환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상담 대기 시간이 수십 분에서 길게는 한두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가 이날 서울 강북구 KB국민은행 한 지점을 방문했는데, 오전 내내 창구 고객들의 대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의 경우 오전에 주담대 등 대출 상담까지 병행할 경우 은행 업무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며 오후에만 대출 상담을 진행하는 등 자율적으로 방침을 마련했습니다.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 한모씨는 "심지어 오늘은 별로 고객이 없는 수준인데 원래 더 정신이 없다"며 "요새 들어 대출 문의가 체감상 두 배에서 세 배는 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가계대출 규제 파장이 은행별 접수 지침에 차이를 만들었고 이것이 곧 고객의 '오픈런'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당국의 총량 규제가 의도와 달리 현장에서 형평성 문제를 키운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출 수요 억제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규제 일관성을 확보하고 은행별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두세 달 사이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창구에는 상담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대출 실행을 앞두고 다른 은행에서 접수 제한이나 심사 지연으로 난관에 부딪힌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은행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잇단 규제가 시장 전반의 대출 수요를 억누르기보다는 일부 은행으로 쏠림을 발생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은행별 규제가 제각각이다 보니 고객들은 규제가 덜한 곳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잇따른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로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자금대출 접수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이 MCI 가입 제한, 2주 이상 사전 접수 제한 등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반면,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은 은행으로 고객들이 몰리며 '오픈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안내판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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