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 중심추가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적 모호성'에서 한국과 미국 간 '전략적 명확성'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금까지 우리 외교가 취해 온 미국과 동맹을 지키면서 중국·러시아의 반발을 최대한 피하는 것, 즉 '전략적 균형·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미국 편향' 전략에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1년 넘게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의 신냉전 체제 속 윤 정부의 외교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한국 정부가 져야 할 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초밀착'…'신냉전' 체제 속 외교 시험대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정부를 관통하는 외교 키워드는 '자유와 연대'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처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끼리 똘똘 뭉쳐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자는 게 핵심인데요.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총회에서도 전 세계 정상들을 향해 "어느 세계 시민이나 국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국제사회가 연대해 그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자유'가 지닌 가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외교는 '담장 위를 걷는 일'"이라며 전략적 모호성을 인지하면서도 사실상 취임 이후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미국 편향 전략을 펼쳤는데요. 지난 1년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 등 속도전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한미일 협력 강화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부응한 면이 컸는데요. 이 같은 행보를 비춰보면 외교정책의 틀이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가치 동맹인 미국과 더욱 밀착하는 전략적 명확성으로 기우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 동북아 외교정책의 틀을 전략적 모호성으로 잡고 외교정책을 이끌어 나갔는데요. 냉혹한 국제질서 속 줄타기 실리 외교를 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뒤따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 관저에서 동맹 70주년 사진집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중, 한러 관계 '삐걱'…중러 충돌에 '한반도 격랑'
특히 윤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모든 외교 현안에서 미국과 목소리를 맞추는 모습이 두드러졌는데요.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중국, 러시아에 대해 미국과 인식을 같이하는 메시지를 내면서 한중, 한러 관계에 갈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대량학살 등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고, 대만 해협의 긴장 상황과 관련해서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에 곧바로 중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겨냥해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거칠게 반발했고, 러시아도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하는 걸 의미한다"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민간인 대규모 공격 시 군사지원(지난 19일 로이터통신)→전쟁 당사국 간 직간접적 관계 고려(24일 워싱턴포스트)→때가 된다면 외면 안 한다(25일 NBC 방송·이상 현지시간·미국 언론매체)' 등의 발언으로 혼선을 가중시켰습니다.
대중러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한미의 뚜렷한 초밀착 행보가 중국·러시아와의 대립 격화로 이어질 경우 한국의 경제·안보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가령 중국의 경우 지난 2016년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한국에 퍼부은 경제 보복보다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당시 중국은 한한령(한류 금지령)과 불매운동, 한국단체관광 금지 등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 우리 경제가 입은 손실은 약 17조원으로 추산됐습니다.
러시아 역시 제10위 교역국이자 북핵 문제에서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나라인데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윤 대통령의 입장이 바뀌면서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도 커진 상황입니다. 앞서 윤석열정부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그동안 미국 등이 우리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와도, 1년 넘게 버티며 신중하게 대응해 왔는데요. 돌연 방미를 앞두고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방미를 기점으로 한국 정부가 져야 할 중·러 리스크도 한층 더 선명해졌다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방미 이후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 강화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한미 정상회담 이후 윤 대통령이 대중러 관계에서 얼마나 외교력을 발휘할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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