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최악'은 면했으나, 경제·안보에서 얻은 실익도 없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미 두 정상은 양국의 포괄적 협력 증대를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동시에, 별도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는데요. 양국 정상이 대북 확장억제 방안을 별도 문건에 담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국내 경제현안과 직결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대한 후속 논의 성과가 없으면서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 해소는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또 러시아·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않기 위해 수위를 조절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의 여지를 남겼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입장과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국 확장억제에 대한 '어음'을 받았지만, 한반도 긴장은 더 첨예해질 가능성을 남겼는데요.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최악은 피했지만, 얻은 게 없는 회담"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핵버튼' 여전히 쥔 미국…'협의 수준'에 그친 핵협의체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80분간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한미정상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회담 후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깊이와 외연을 더욱 확장하고, 미래로 전진해 나갈 것"이라며 첫 번째 핵심성과로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를 꼽았는데요.
이에 대한 일환으로 두 정상은 미국의 전략자산의 한반도 정례 배치와 우리 측과의 정보 공유,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창설 등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별도로 발표했습니다. '워싱턴 선언'은 그간 정의가 모호했던 '한국식 핵공유'를 한미 정상이 문서화한 셈인데요. 양 정상은 "미국은 미국 핵태세보고서의 선언적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핵무기 사용의 경우 한국과 이를 협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확장억제에 대한 '워싱턴선언'의 실효성은 현재로서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기획그룹(NPG)과 비슷한 핵협의그룹을 만들었다지만, 나토 방식은 핵기획그룹이란 명칭이 말해주듯 핵 계획부터 핵 운반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반면 한미 핵협의그룹은 말 그대로 '협의'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입니다.
'워싱턴선언'은 핵협의그룹에 대해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규정하면서 '기획'보다는 '협의'에 무게를 뒀습니다. 특히 선언은 "한미동맹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핵 작전과 재래식 작전의 주체를 구분했는데요. 앞서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사전 브리핑에서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은 '워싱턴선언'이라는 화려한 포장을 얻는 대신 사실상 자체 핵무장 포기 선언을 한 셈인데요. 선언은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며 한국의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및 이점을 인식한다"고 함으로써 한국 내에서 제기되는 독자 핵무장론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자적으로 핵 개발을 하고자 하는 서울의 '외도'가 점증하는 위험 요인이 되고 있는데, 이번 선언은 이를 선제적으로 제어한 (미국의) 영리한 노력"이라고 미국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한미 정상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묘수 못 찾은 'IRA·반도체법'…중·러 리스크 '잠복'
여기에 한미 양국은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했으나, IRA·반도체법과 관련한 추가 합의는 없었는데요. 의제에 IRA·반도체법이 올랐지만 두 정상은 원론적인 논의에 그치며 뾰족한 해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IRA·반도체법에 대한 한국 기업의 우려가 큰 상황에서 정작 반도체업계가 바라는 협상 성과는 가시화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관계의 핵심 리스크인 대만 문제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공동성명을 통해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진 못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공동성명은 초반부에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규탄함에 있어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한다"며 "정치, 안보, 인도적, 경제적 지원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성명 중반부에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며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했다"고 밝혔습니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 국익'에 충실한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정치권에서는 이번 회담이 성과 없는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했다며 혹평이 이어졌습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기존 미국의 핵우산 정책과 크게 달라진 게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고 혹평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대통령실 도감청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없었다"며 "이번 정상회담이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 변화의 전기를 마련했느냐는 점에서는 낙제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정상회담 평가에 대해 "최악은 피했지만, 실익은 없었다"며 "우크라이나하고 대만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있는 문제로, 지뢰밭은 아직 남았다"고 전망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