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한국경제인협회는 기업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규제 59건의 '한시적 유예'를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고 30일 밝혔습니다. 한시적 규제유예는 기존 정책의 근간을 유지하되 상황 변화를 감안해 일정기간 규제를 중단·완화하는 제도인데요. 기업들은 규제 준수를 위한 기술이 개발되기도 전에 규제부터 덜컥 도입하는 사례가 있다며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가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발표한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소방안'이었는데요. 이는 건설사가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보완시공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기준 미달 시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도록 한 규제입니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이 강화된 기준을 충족할 공법이나 기술이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한경협은 "소음방지 보완기술도 상용화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 사용승인 보류가 날 경우 업체들은 막대한 손해배상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면서 "규제 기준에 맞춘 소음방지 및 보완 기술이 개발돼 가능할 때까지 규제를 유예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기존의 법·제도가 기술·산업 발전이나 산업간 융복합 추세를 반영하지 못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도 지적했습니다.
무인(無人)선박 자율운항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조선사들은 선원 승선 없이 원격제어로 선박을 운항할 수 있는 자율운항기술을 개발 중인데, 이를 위해서는 실제 해역에서의 실험 운항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존 유인(有人)선박에 적용되던 현행법상의 규제를 무인선박에 적용할 경우 관련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한경협은 "무인 자율운항 선박의 실제 운행에 관한 규정이 아직 미비한 상황으로 관련 제도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기존 규제들이 기업의 영업범위나 사업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규제인 이른바 '일단 하지마 규제'도 개선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받고 이상 징후 시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신속하게 연계될 수 있는 토탈 헬스케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현행 의료법(제27조제3항)은 영리 목적의 의료기관·의료인 소개·알선·유인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회사의 자회사가 고객에게 병원이나 의사를 소개해 주는 '토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경협은 "의료법이 앞으로 새로 생겨날 수요자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사업의 출현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관련 규제의 개선을 건의했습니다.
기업이 준수하기 어려운 과도한 행정기준을 강제하거나, 규제목적 대비 과도한 행정절차로 기업에게 불필요한 준수의무를 부과하는 규제도 지적했는데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의 자격요건을 관련경력 6년 이상으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이에 한경협은 국내 CPO의 자격요건이 EU의 데이터보호관리자(DPO)에 비해 경력 기간 등이 과도해 기업부담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이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적용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이밖에 기업활동 부담해소를 위해 하도급벌점 경감점수 적용 기간 확대, 과실에 의한 대기 자가측정의무 위반시 처벌 완화, 해외수출무기 정비용 수리부속 수출허가제도 개선 등을 건의했습니다. 시행시기 도래로 인한 신설·강화 규제 완화를 위해선 생활숙박시설 오피스텔 용도변경 특례 재시행 및 이행강제금 처분 유예, 당류 강조표시 규제 완화 요청 등 59건을 '한시적 규제유예 과제'로 꼽았습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법·시행령 뿐만 아니라 훈령·예규·고시 등의 행정규칙들, 여기에 부처 내규와 지차제 각종 조례들까지 무수히 많은 단계에서 기업규제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기업들에게는 법령 못지않게 행정규칙 이하 단계의 규제도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국무조정실이 적극 주도해서 기업 최일선에서 적용되는 불합리한 현장 규제들을 적극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