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이는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태어나고 있다
2026-03-23 06:00:00 2026-03-23 06:00:00
‘16, 280.’
우리나라 인구정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숫자다. 지난 16년 동안 저출생 대응 정책에 약 280조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의미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지만 결과는 냉정하다.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인 인구 감소 국가로 분류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통계 속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아이들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태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통계를 보면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0.93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은 0.78, 서울은 0.59였다. 수도인 서울보다 지방의 출생률이 훨씬 높다. 실제로 다자녀 가정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도 대도시가 아니라 농촌이다. 이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촌에서 청년농 정착 정책이 확대되면서 젊은 세대가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 결과 출생률 역시 함께 높아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정책의 시선이다. 대한민국의 인구정책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는 공간은 점점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책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농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료 인프라다. 도시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다는 이야기가 흔하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줄을 설 병원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아프면 몇 시간을 이동해 도시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일이 일상이 된다. 산부인과 역시 마찬가지다. 농촌에서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많아 임신부가 먼 도시까지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출산이 임박하면 마을 전체가 긴장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돌봄 제도 역시 농촌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농민은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맞벌이 가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모두 농사를 지어도 어린이집 입소 점수에서 불리해지거나 돌봄 서비스 이용 순번에서 밀리는 사례가 발생한다. 여성 농민에게 제공되는 일부 지원 정책이 존재하지만 장기적인 돌봄 체계로 보기는 어렵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들이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농촌의 의료·보육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전북 지역 어린이집 아이들이 고구마 수확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농촌진흥청 제공)
 
결국 문제는 하나로 모인다. 아이를 낳는 공간과 정책이 설계된 공간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출산 장려금이나 일회성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환경을 중심으로 정책의 시선을 옮겨야 한다. 아이들이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지방, 특히 농촌의 의료·보육 인프라를 강화하는 일은 단순한 지역 정책이 아니라 국가 인구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저출생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출산율을 올리는 정책이 아니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으로 말이다. 아이들은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 다만 그 장소가 우리가 정책의 중심이라고 믿어온 수도가 아닐 뿐이다.
 
이정원 쉼표힐링팜 CEO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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