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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올해 본격적으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 조짐이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조 단위 인수를 통한 미래성장동력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그동안 잠잠했던 삼성의 행보에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초격차'를 다시 꺼내 들었고, 총수의 입에선 '사즉생'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할 '초대형 M&A'가 성사될 수 있을지 <IB토마토>가 취재했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지난 7일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M&A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했다. 전장 분야와 가전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3억5000만 달러(약 5000억원)를 들였지만,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한 113조원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최근 행보는 분주하다. 이 회장이 '사즉생', '독한 삼성인' 메시지를 던진 이후, 지난 3월 열린 첫 주주총회에선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에 대한 실패, 대형 M&A 부재 등으로 인한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달 뒤 외부적으론 8년 만에 장전된 실탄을 풀면서 M&A 전략을 재가동했고, 내부적으론 'AI생산성 혁신 그룹'을 신설해 기술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초 이 회장의 지시로 모든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실시했다. 여기서 강조한 것도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기술이다.
당시 이 회장은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라며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공백기였던 삼성전자의 M&A에 대한 기대감은 예년과 분명 다르다. 2016년 11월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이후 약 8년이 지났고,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 회장이 2017년 2월 구속 기소된 이후 지난 2월 고등법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19개 혐의도 벗었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가 풀렸으니 큰 건이 터질 때가 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초격차' 무너진 삼성, M&A로 승부수
삼성전자는 그동안 주로 벤처기업이나 기술력이 뛰어난 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M&A를 단행해왔다. 모바일 분야에선 사물인터넷(IoT) 기술 강화를 위한 스마트싱스(SmartThings), 2015년 삼성페이 기반을 마련한 루프페이(LoopPay) 인수 등으로 경쟁력을 키웠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2022년 시노라(Cynora), 2023년 이매진(eMagin)을 품으며 급성장 중인 OLED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AI 분야에선 '빅스비' 개발에 핵심 역할을 담당한 비브랩스(Viv Labs)를 2016년 사들였고, 지난해엔 '지식 그래프' 기술을 보유한 영국의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하며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나섰다. 최근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 로봇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하면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뚜렷한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국내에서도 1992년 이후 33년간 지켜온 'D램 시장 1위' 자리를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000660)에 내줬다. 시장에선 이를 단순 점유율만의 문제가 아닌 '초격차'가 무너지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선 TSMC에 2022년 3분기부터 매출을 역전당한 이후,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와의 매출 격차는 10조원이 넘는다.
하만 인수 이후 초대형 M&A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로는 ▲반도체 ▲전장(차량용 전기·전자 장비) ▲로봇 ▲AI 등이 거론된다. 반도체의 경우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NXP가 유력하다. NXP는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약 1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독일 인피니온, 일본 르네사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함께 5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NXP 인수를 검토해왔지만, 몸값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 NXP의 몸값은 60조~80조원으로 평가된다.
양측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더라도 반도체는 국가 간 이해관계로 인해 실제 성사가 쉽지 않다. 실제로 2018년 퀄컴이 NXP를 인수하려다 '반도체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고, 엔비디아의 ARM 홀딩스 인수도 각국 이의제기로 좌절된 바 있다. 반독점 심사는 반도체 이해당사국인 한국과 미국, 영국, 유럽연합, 브라질, 싱가포르, 대만, 중국이 모두 승인해야만 통과할 수 있어 실제 성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3월 주총서 "반도체 분야는 주요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인수 승인 과정에서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대형 M&A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외에도 유력 인수 후보로 검토되던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 암페어컴퓨팅은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지난 3월 65억 달러(약 9조5000억원)에 인수를 마무리 지었다.
8년간의 공백…초대형 M&A 기대감
반도체와 관련된 초대형 M&A가 한계에 봉착하자 업계에선 전장사업 부문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독일 콘티넨탈의 전장사업 부문은 현재 M&A 매물로 나와있는 데다, 하만의 경영진이 강력한 인수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티넨탈의 전장사업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과 시너지도 기대된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나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에 요구되는 기술을 삼성전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완성차 업체를 새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다면 차량용 메모리에 대한 시장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차량용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마이크론이 44%이며 삼성전자가 32%로 추격 중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차세대 전장용 반도체인 5나노 eMRAM 공정 로드맵을 공개하는 등 전장 솔루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일반 내연기관에는 통상 600~700개의 반도체 칩이 필요한데, 전기차(1600개 이상)와 자율주행 스마트카(3000개 이상)에는 더 많은 칩이 필요하다. 향후 eMRAM을 찾는 고객사는 점차 늘어날 전망으로,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2022년 94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2029년 말까지 197조원으로 2배 이상 커진다고 예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그간 인수합병 대상으로 미국계 다국적기업 존슨콘트롤즈 냉난방공조(HVAC) 사업부, 미용의료기기 업체
클래시스(214150) 등이 거론된 바 있다. 다만 존슨콘트롤즈는 80억달러(약 10조원)에 이르는 몸값에 인수를 포기했고, 클래시스는 기존 사업에 대한 시너지가 미미해 사실상 인수 의향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인수와 관련해선 여러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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