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애플이 '세계개발자회의(WWDC) 25'에서 시리 업그레이드를 연기하는 등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자 애플 의존도가 높은 LG이노텍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덩달아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스마트폰 관세 부과와 이에 따른 단가 인하 압박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LG이노텍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LG이노텍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됩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 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9일(현지시간) 애플은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에서 WWDC 25를 개최했습니다. WWDC는 애플이 매년 6월경 여는 대규모 개발자 행사로, 자사 운영체제(OS)의 주요 업데이트와 신제품, 인공지능(AI) 기능 등을 공개하는 자리입니다.
이날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은 “시리의 개인화 기능에는 더 많은 개발 시간이 필요하다”며 올해 출시 예정이던 시리 업그레이드를 연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애플은 자사 기기에 탑재된 시리에 생성형 AI를 적용해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지난해에도 계획에 차질이 생기며 출시가 한 차례 미뤄진 바 있습니다.
애플이 새롭게 도입하는 AI 기능도 실망감을 더합니다. 회사는 △화면 속 콘텐츠를 인식해 챗GPT로 검색하거나 일정을 자동 추가하는 ‘비주얼 인텔리전스’ △실시간 운동 데이터를 분석해 피드백을 제공하는 ‘워크아웃 버디’ △실시간 통번역 △스팸 전화 및 메시지 감지 기능 등을 추가했다고 밝혔지만, 이들 기능은 삼성전자, 구글 등 경쟁사의 스마트폰에 일찍이 탑재됐거나 다른 IT 기업들이 상용화한 기술입니다.
이에 블룸버그는 “경쟁사들에 비해 AI 기술력이 뒤떨어진 애플이 올해 WWDC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 언어 번역 도구와 대대적인 소프트웨어 재설계를 발표했지만, 일부 AI 업그레이드는 여전히 지연되고 있다”며 “애플의 AI 본격 복귀는 아직 멀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처럼 애플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잇따르는 가운데 신제품 판매 전망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날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와 경기 둔화 등을 이유로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생산량이 전년 대비 1%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아이폰, 갤럭시 등 해외 생산 스마트폰에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아이폰17 시리즈의 흥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이 여파는 애플 매출 의존도가 높은 LG이노텍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LG이노텍은 애플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며 전체 매출의 약 80%를 애플에서 올리고 있어 애플의 실적이 곧 LG이노텍의 실적에 직결되는 구조입니다.
LG이노텍은 올해 1분기 매출 4조9828억원, 영업이익 125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8.9% 감소해 수익성 회복이 주요 과제입니다. 수익성 하락은 카메라 모듈 부문에서 원가 상승과 함께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로 공급 단가가 낮아진 영향으로 분석됩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스마트폰 품목별 관세 부과로 애플이 신제품 가격을 동결하고 LG이노텍을 포함한 부품사에 단가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에 따라 LG이노텍은 애플 의존도를 낮추고,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박지환 LG이노텍 최고재무책임자(CFO) 전무는 “FC-BGA, 차량용 AP 모듈 등 AI·반도체 부품과 함께 센서·통신·조명 등 모빌리티 핵심 부품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로봇 분야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도 확대해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