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정재연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1리 마을 어귀에 사는 박해영(66세)씨는 21일 장화를 신은 채 자신의 집 마당에 쌓인 토사를 삽으로 퍼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선 포크레인이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흙을 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폭우로 대보1리 남쪽 조종천이 넘치면서 마을이 삽시간에 침수됐기 때문입니다. 박씨는 오전 내내 구슬땀을 흘렸지만, 마당의 흙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클레인도 마을 입구 진입로에 쌓인 토사를 완전히 치우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1일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1리에서 박해영(66세)씨가 자신의 집 마당에 쌓인 토사를 치우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가평군에서는 19일 밤 12시부터 20일 오전 6시까지 6시간 동안 누적 강수량 197.5㎜에 달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폭우로 대보1리 남쪽에 있는 조종천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났고, 마을도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박씨는 "홍수가 일어났을 때 마침 집에 손주들을 포함해 식구 8명이 있었는데 겨우 대피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식구 8명이 큰일이 날 뻔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라고 한탄했습니다.
침수됐다가 물이 빠진 마을은 '초토화'가 됐습니다. 조종천 위에 있는 대보교 난간은 호우로 인해 불어난 물살과 부유물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무 등 일부 부유물은 이날까지도 다리 위에 쌓여 사람과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21일 경기도 가평군 대보교의 왼쪽 난간이 뜯겨 나가 있고, 대보교 우측에 나무 등이 쌓여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마을 주택들 옆엔 컨테이너가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원래 컨테이너는 대보1리 마을회관 옆에 있었고, 농기구 등을 넣어놓는 마을 창고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조종천이 넘치면서 홍수가 발생하자 컨테이너는 수십 미터를 떠다녔고, 물이 빠지자 마을 주택들 바로 앞에서 길을 막고 쓰러져버린 겁니다.
마을 주민들은 조종천의 수위가 마을을 덮칠 만큼 올라온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수해를 입은 주민들과 이야기 중이던 남상진(67)씨는 "제 어머니가 올해 92세인데 이런 홍수는 평생 처음이라고 하셨다"면서 "이웃 중에는 집에 있다가 물이 목까지 차오르자 창문 통해서 겨우 탈출한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장화를 신은 엄인권 조종면 주민자치회장(56세) 역시 "조종천 위에 대보교가 설치된 게 100년 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번 폭우 때 처음 잠겼다"고 했습니다.
주민들은 사상 초유의 홍수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박해영씨도 "20일 새벽 1시가 되기 전에 비가 오길래 홍수가 날까 봐 걱정이 돼서 조종천 주변을 살폈는데 그때까지는 괜찮았다"며 "그러고 나서 집에서 잠들었는데, 마을 이장의 전화로 잠이 깼다. 이미 집에 물이 들어와서 허벅지까지 찼다"고 했습니다.
발목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채 자신의 집 지하실에 쌓인 토사를 퍼내던 최성옥(76세·여)씨 "새벽에 재난 문자들이 왔지만 비가 이렇게 많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새벽 2시 넘어서 살펴보니 물이 마당까지 차올라서 대피할 수 없었다. 대피할 수 있었다고 해도, 중병에 걸려서 상체도 스스로 못 일으키는 남편을 집에 두고 갈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21일 경기도 가평군 상면행정복지센터 밖에서 백모(77세·가평군 상면 율길리)씨가 자신의 집 근처 고가도로를 촬영한 사진을 휴대전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가평군 다른 지역 주민들도 홍수에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면행정복지센터에 자신이 당한 산사태 피해 현황을 접수하러 온 백모(77세·가평군 상면 율길리)씨는 "무슨 폭탄 터지는 소리도 아니고, 나무하고 돌이 밀려 들어오는 큰 소리에 20일 새벽 2시에 잠이 깼다"며 "산사태로 집 문이 막혀서 나갈 수가 없었고, 새벽 4시30분부터 오전 9시까지 119에 신고했는데 전화가 됐다, 안 됐다 했다. 산사태 이후 11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했습니다. 이어 "집 주변 경로당에 대피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며 "통신이 아직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홍수로 인한 피해는 사람과 주택만이 아니라 농·축산업에도 미쳤습니다. 가평군에 있는 축산농가 307호 중 11호가 침수됐습니다. 젖소 31마리가 떠내려갔고, 1마리가 폐사했습니다. 100여헥타르(㏊) 면적에 걸친 농작물이 침수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가평군 상면 항사리에 있는 피해 젖소 농장을 방문해 복구 진행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정재연 인턴기자 lotu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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