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사고에 대한 엄벌을 주문하고 있지만 산재 은폐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산재를 숨기거나 신고하지 않고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은 사례만 23만건이 넘기 때문입니다. 산재 은폐·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도 등한시할 수 없는 만큼, 산재 은폐·미신고가 없도록 관련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업무상 질병·직업병 사망에 대한 대책 마련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산재 은폐·미신고 적발 건수가 총 23만6512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산재 은폐·미신고 적발 '23만건↑'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산재 은폐·미신고 적발 건수가 총 23만6512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당 청구 금액으로는 328억800만원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 2만9734건에서 2022년에는 5만1800건까지 급증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는 4만8020건이 적발되면서 4년 전과 비교해 61.5% 뛰었습니다. 올해(6월까지)는 1만4956건 수준으로 집계됐습니다.
적발 금액도 2020년 약 45억원에서 지난해 약 61억원으로 34.8% 증가했습니다. 사례별로 보면 '상차 작업 중 추락' 사고를 당한 A씨의 경우 약 한 달 기간 동안 산재보험이 아니 건강보험으로 3000만원이 넘는 진료를 받다가 적발됐습니다.
건보공단 측은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방지 방안 연구를 올해 4월부터 시작했지만 관련 재정 누수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지적돼온 사안입니다.
지난 2018년도 관련 연구에서도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금액이 2024년도 적발액보다 최소 4.5배에서 52.7배 많은 연간 최소 277억~3218억원을 예상한 바 있습니다. 올해 다시 시작한 연구가 끝나는 시점은 11월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선민 의원은 "산업재해를 은폐하려다 적발된 것만 매년 4만~5만건씩 발생하는 등 현장에서는 산업재해 사고를 감추기 급급한 실정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자료 연계에 의한 사후 적발뿐 정부는 뾰족한 대안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산업재해 은폐·미신고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 문제를 넘어 더 이상 산업재해가 은폐·미신고되지 않도록 의료기관 진료 시 산업재해와 건강보험을 즉각 구분하는 등 시급히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건설 현장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유가족과 건설노조,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26일 서울 강남에서 건설 현장 안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산재, 중소 사업장 월등히 높아"
무엇보다 한국의 가장 핵심적인 산업안전보건 향상 과제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10만명당 '치명적 산업재해자 수'를 현 4명대에서 1명대로 낮추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50인 미만 중소·하청 부문의 사망사고 재해자 수를 대폭 줄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날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노동 현안과 관련된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듣는 간담회에서 '내외국인을 망라하고 안전한 일터'를 당부한 것도 이와 궤를 함께합니다. 최근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은 294만5136개로 이 중 50인 미만 중소 사업장이 98.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산재보험 적용 노동자 수 2063만7107명 중 약 59.6%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소 규모 사업장은 사업주와 노동자 모두 안전보건 자원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2023년 전체 업무상 사고 사망 만인율(인구 1만명당 사망자 수 비율)은 0.39인 데 반해 50인 미만은 0.52로 평균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5인 미만의 경우는 0.80으로 월등하게 높습니다.
박종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장 노사, 정부, 그리고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영국, 독일, 일본 등과 비교하면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자 수 비율은 여전히 높고 시민들 또한 사업장에서 추락, 끼임 등의 재래형 산재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자는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80% 정도가 집중되고 있다. 또 중소사업장은 원하청 관계, 건설업과 제조업의 재래형 재해, 고령자 및 외국인 산재 문제가 중첩돼 있다"며 "이러한 점에서 중소사업장의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라고 지목했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시내 기업 밀집 지역에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원하청 통합 체계, 업무상 질병 사망도"
그러면서 중소 사업장 산업안전 대책과 관련해 개별 사업장 단위가 아닌 원청별, 지역·업종별 등 집합적으로 접근하는 산재 예방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박종식 연구위원은 "지금도 '원하청 안전보건협의체'는 하도록 제도화돼 있으나 이 협의체에는 노동이 배제된 한계가 있다"며 "기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노사가 동수로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협의체를 '원하청 통합 산업안전보건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원하청 노조·노동자의 참여도 보장,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원하청 통합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 보건 체계를 거듭 밝힌 바 있습니다. 현재 고용부 측은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 관리 체계 등을 담은 노동 안전 종합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입니다.
업무상 질병·직업병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산재 사망자 수의 약 81%가 업무상 질병 사망자"라며 "향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상 질병 및 직업병 감소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응 전략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폐암 산업재해 피해자 학교 급식 조리사가 지난 6월2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죽음의 학교 급식실 폐암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