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국회가 다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정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21일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2차 상법 개정안까지 잇달아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입니다. 국민의힘은 무제한 토론으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겠다는 방침이지만, 의석수 열세로 저지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민주당은 예정된 일정대로 입법을 밀어붙인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야의 충돌이 불가피한 가운데, 국민의힘은 여론전에 무게를 두는 모습입니다.
21일~25일 본회의 개최…22일 제외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8월 임시국회가 다시 필리버스터 정국에 돌입합니다. 민주당발 2차 입법 시동의 첫 번째 국회 본회의는 21일 오전 10시에 열립니다. 처음 표결에 붙여질 법안은 방문진법 개정안입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고 국회 교섭단체와 관련 기관의 추천으로 구성하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방문진법 개정안은 지난 5일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로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7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남과 동시에 토론도 자동 종료됐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합니다.
방문진법 개정안 처리 직후 EBS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됩니다. 방문진법과 같이 EBS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국민의힘은 EBS법을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EBS 장악 초석'으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22일 오전 필리버스터 종료 후 국회는 EBS법 개정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칩니다. 표결 처리가 끝나면 본회의를 열지 않습니다. 당초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는 22일도 본회의가 예정됐지만 여야 합의로 해당 날짜를 제외했습니다.
23일 다시 본회의가 열리면 노란봉투법이 상정됩니다. 노란봉투법은 회사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또 파업 등 합법적 노동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면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역시 무제한 토론에 나섭니다.
24일 오전 노란봉투법 필리버스터 종료와 함께 표결이 시작됩니다. 직후 2차 상법 개정안 상정과 필리버스터, 다음 날인 25일 표결이 반복됩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분리 선출 감사위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3일 상법 개정안 1차가 통과됐기 때문에 시장 영향을 살펴보고 추가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오는 21일부터 필리버스터 정국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필리버스터 모습. (사진=뉴시스)
필버 정국 재연에도…입법 저지 '불가능'
지난 7월 임시국회에 이어 필리버스터 정국이 재연되면서 여야 대치가 한층 격해지는 모습입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방송 장악 3법 중 가장 나쁜 법이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이라며 "전교조 이념 교육으로 오염시키겠다는 법이다. 강행 처리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라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노조법과 상법 개정은 우리 기업을 해외로 내쫓고 일자리 빼앗는 반경제 악법"이라며 "국민의힘에선 반경제 악법에 대해 끝까지 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국민의힘은 '무제한 토론 본회의장 지킴조'를 편성했습니다. 21일부터 25일까지 한 조당 20여명씩 총 5개 조를 구성해 필리버스터에 나섭니다. 본회의 안건과 무제한 토론 시 예상 처리 일자도 공유하며 쟁점 법안 저지 의지를 밝혔습니다. 송 위원장은 본회의 직전인 21일 오전에 의원총회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여당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이날 원내 지침을 발표하고 의원 전원의 국회 경내 대기와 함께 실시간 지침 적극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2개 상임위가 한 조로 묶여 조별로 6시간씩 토론 당번자가 됩니다. 원내대표단은 본회의장과 상황실에 대기하며 토론자 부재 또는 비상 상황 발생 시 무제한 토론에 투입됩니다.
필리버스터 정국 재연에도 국민의힘의 입법 저지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여당과 뜻을 함께하는 범진보 정당과 비교해 의석수가 절반에 불과한 만큼 필리버스터를 통해 입법 지연만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지적하는 여론전에 집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민심을 되찾기 전에 반향을 일으키긴 어렵다고 꼬집습니다. 오히려 경제계 입장을 대변하며 여당과 재협상하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철현 경일대학교 특임교수는 "앞서 필리버스터를 한 차례 진행했지만, 여론의 반향을 전혀 얻지 못했다"며 "일단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게 첫째"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필리버스터로 막지 못한다면 경제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최악의 독소 조항을 빼거나 시행 시기를 늦추는 등 재협상을 하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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