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 비웃듯 대대적 단속…미 진출 한국기업 투자 위축 파장
LG엔솔, CHO 급파 “안전 복귀 최선”
급작스런 단속과 구금…외신도 ‘우려’
미 투자 기업에 ‘뒤통수’ 때린 트럼프
미 출장 중단 등 파장…”난감한 상황”
2025-09-07 15:39:26 2025-09-07 15:39:26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미국 이민당국이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합작 투자해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을 급습하고 한국인 직원 등을 무더기로 체포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관세 정책에 대미 투자를 늘리기로 화답했지만, 건설 중인 시설에 대한 이민국의 대대적 단속과 대규모 구금이 이례적으로 이뤄지면서, 기업들의 투자 위축 등 경영 불확실성의 우려가 커지는 모습입니다.
 
미국 이민당국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단속 현장 (사진=ICE 영상 캡처)
 
LG에너지솔루션은 7일 오전 미국 배터리공장에 대한 단속으로 협력사 포함 300여명의 인력이 구금된 사태와 관련 현장 대응을 위해 최고인사책임자(CHO)를 급파했습니다.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CHO(전무)는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지금은 구금된 분들의 조속한 석방이 최우선이라며 정부에서도 총력으로 대응해 주시고 있는 만큼 신속하고 안전한 복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CHO는 미국에서의 대응 계획이나 현재 구금된 직원들의 상태 등 추가 질문에는 말을 아낀 채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앞선 4(현지시각)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IS) 등은 조지아주 서배나에 건설 중인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 대해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475명이 체포돼 구금됐고 이중 약 300여명이 한국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금된 인원 중 47(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LG에너지솔루션 소속입니다. 또한 HL-GA 배터리 회사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은 250여명으로 대다수가 한국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미 이민당국의 단속과 체포에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날 구금자의 조기 석방을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진행 중이라며 구금자들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가족들에게 정기 복용 약품 등을 파악 중으로 필요 의약품이 구금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현대차에선 단속된 인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대차는 구금된 인원 중 현대차 임직원은 없다면서 현장에서 근무하는 인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HL-GA 배터리 측도 당국 조사에 전적으로 협력 중이며 건설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CHO가 현장 대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LG엔솔)
 
급작스러운 단속과 구금…왜?
 
이번 미국 이민당국의 불시 급습은 불법 고용과 은닉·보호 혐의에 초점을 두고 이뤄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미국 취업 비자를 받았지만 체류기간을 넘긴 이들을 고용하고 이 사실을 당국에 숨겼다는 것이 단속 배경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 직원들이 체포된 이유로는 사업 목적인 B1, B2 비자가 아닌 단기 체류 목적 무비자인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통해 미국 출장을 간 것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단일 현장 사상 최대 규모의 이번 단속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s)였고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두둔했습니다.
 
하지만 외신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일제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관세 협상으로 한미 관계가 민감한 상황에서 발생한 구금 사태는 향후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향방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이민 단속으로 한미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관세 협상을 대가로 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에 현대차와 LG같은 한국 주요 대기업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다만 이번 이민 단속은 한국기업과 정부 당국들에게 미국 내 사업 운영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대차 등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해외 기업들에게 강력한 이민 단속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가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트럼프에 뒤통수…투자 위축 우려
 
이번에 단속이 이뤄진 HL-GA 배터리 공장은 지난 2023년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건설 중인 곳입니다. 미국 조지아주 앨라벨에 약 300만평 규모로 조성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부지 안에 자리한 공장으로 양사는 43억달러(6조원)를 공동 투자했습니다. 연간 약 30GWh, 전기차(EV) 30만대 분량의 배터리셀을 양산할 수 있는 규모로 이르면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공장 건설이 일시 중단되면서 가동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이번 공장 외에도 다수의 현지 공사 작업이 예정돼 있어 추가 차질에 대한 우려도 커집니다. 현대차는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 신설과 루이지애나주에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계획 중입니다. 현지에 공장을 건설 중인 다른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달러(54조원) 이상을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7000만달러(56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립 중입니다.
 
재계에서는 미국에 진출한지 오래돼 관련 사항을 챙겨온 만큼 당장의 불안요소는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 불법체류자 단속과 입국 심사가 강화됨에 따라 관련 가이드라인을 정비한 곳도 다수입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최근 “ESTA를 활용한 미국 출장 시 입국 취소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관련 비자를 통한 가이드라인을 직원들에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가뜩이나 관세 정책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대미 투자로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이민 단속이라는 새로운 암초를 맞이한 격으로 경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는 형국입니다. 실제로 현대차의 경우 올해 초 백악관에서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단한 기업이라고 추켜세웠지만, ‘대규모 단속이라는 철퇴라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습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 기업의 미국 출장도 전면 중단되는 모습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미국 출장을 앞두고 있던 직원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경우가 아니면 다음주 출장을 보류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임직원에게 미국 출장 전면 중단 및 현재 출장자는 업무 현황 등 고려해 즉시 귀국 또는 숙소 대기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이민 단속으로 미국에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투자를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되게 난감한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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