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건진법사 관봉권 띠지·스티커 분실 사건'을 두고 검찰 내 '네 탓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담당 검사가 '원형 보존을 지시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당시 증거물을 압수했던 남부지검 압수계의 관리 부실 탓을 주장하고 나선 겁니다. 검찰 수사관 측은 "이해할 수 없다"며 맞받아쳤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2일 해당 사건과 관련해 전체회의 차원의 입법 청문회를 개최, 진상규명에 나섭니다.
<뉴스토마토>가 확보한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관련 수사 기록 중 일부. 사진 왼쪽은 자택 압수수색 이후 확인서를 쓰는 전성배씨 모습. 사진 오른쪽은 전씨가 작성한 확인서. (사진=뉴스토마토)
앞서 <뉴스토마토>는 지난 16일
(단독)'건진 관봉권' 센 후에도 띠지·스티커 그대로…검찰 또 거짓말 기사를 통해 서울남부지검이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돈뭉치를 셀 때만 해도 관봉권의 띠지·스티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은 관봉권 띠지·스티커 분실과 관련해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른다"라고 했지만, 검찰이 사건을 축소하고자 의도적으로 없앤 것 아니냐는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관봉권은 한국은행에서 새 지폐를 비닐에 밀봉한 채 시중은행에 지급하는 돈다발입니다. 띠지와 스티커가 붙어 있는 관봉권은 은행에서 막 출고된 새 돈뭉치임을 의미하며, 이는 돈의 출처와 자금세탁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련해 국회 법사위는 22일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고 진상규명에 나섭니다. 청문회엔 남부지검의 김모 수사관, 남모 수사관을 비롯해 당시 남부지검 지휘부였던 신응석 전 지검장, 이희동 전 1차장검사, 박건욱 전 부장검사 등도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그런데 담당 수사를 맡은 최재현 검사는 지난 18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청문회에서 증언하면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그전에 공개하는 것이 관련된 분들의 피해를 줄이고 청문회가 진실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메신저 대화와 쪽지를 공개했습니다. 최 검사가 공개한 메시지와 쪽지 등에는 현금 띠지와 비닐 포장 등 압수물의 '원형 보존'을 지시했으나 담당 수사관이 이를 분실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최 검사의 글을 보도한 <KBS> 기사에 따르면, 지난 1월9일 수사팀 수사관인 이주연 계장은 당시 사건과 압수계에 근무하던 남경민 수사관에게 "띠지 및 비닐 포장이 제거된 경위를 확인하고자 한다"며 "오늘 영치 금고 확인 결과, 띠지 및 비닐 포장(한국은행 기재 출력물 포함)이 모두 제거되어 고무 밴드(100매씩, 33개)로 묶여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남 수사관은 이 계장에게 "원형 보존은 현금을 계좌 보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현금을 계수하려면 필수적으로 띠지와 포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또 "압수계에는 따로 보관된 띠지와 포장지, 서류 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도 했습니다.
최 검사는 같은 날 남 수사관에게도 압수물 관련 규정을 근거로 업무 매뉴얼을 확인합니다. 이후 '없다'는 취지의 답신을 받자, 최 검사는 "원형 보존은 증거물로서 그 자체로 증거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형이 훼손되면 안 되고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며 "사건과에서 말씀하신 대로 업무를 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이니 사건과장께 보고드려서 올바른 업무 절차를 마련하셔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하루 뒤인 10일 당시 사건과장에게도 "원형 보존 지휘의 경우 원형 보존의 방법과 절차를 검토해보셔야 할 것 같아 쪽지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남 수사관은 이후 이 계장에게 "한국은행 바코드와 함께 랩핑되어 있던 현금은 포장 상태 그대로 압수계로 인계해주셨던 것일지요?"라고 질문하고, 이 계장은 "한국은행에서 포장되어서 나온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남 수사관은 "수사에 지장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합니다.
지난 9월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열린 검찰 개혁 입법청문회에서 서울 남부지검에서 건진 전성배씨 관련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과 압수수색 증거품인 '관봉권'을 관리했던 검찰 수사관들이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최 검사의 주장에 대해선 검찰 수사관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수사관은 "관봉권을 뜯어서 돈을 셌다는 걸 알았다면, '관봉권이 중요한데 왜 뜯었냐'라고 압수물 수리할 때 물었어야 했다"며 "애초에 관봉권에 포커싱을 맞췄다면 아예 수사관이 뜯지 못하도록 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앞서 지난 9월5일 법사위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검찰 수사관들의 비토가 쏟아졌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당시 수사관으로 추정되는 한 직원은 "목록에 '현금 3300매 5만원권' 기재했으니 다음 날 계수기로 다시 현금을 세었던 것이고, 수사팀 계장도 매수만 신경 쓴 것 같다"며 "'원형 보존'하라고 3번이나 말한 게 뜯지 말고 그대로 보관하라는 취지였다면 다음 날 수사팀 계장이 와서 계수기로 현금을 셌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거 같다"고 의견을 남긴 바 있습니다.
한편 경찰은 띠지·스티커 분실 논란에 휩싸인 검찰 수사관 2명에 대해 수사에 나선 상황입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김정민, 남경민 압수계 소속 수사관이 사전에 증언을 조율하고 국회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는 취지의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