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소비자 보호 강화 속도…건전성엔 뒷짐
2025-10-14 14:23:27 2025-10-14 17:16:55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우선순위에 두고 조직·기능·인력·업무 전반의 개편과 정책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금융사 배상 책임 확대, 편면적 구속력 도입 등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고 있는데요. 금융사의 재무적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자본비율이 떨어지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건전성 감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배상 책임 확대 등 법안 속속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소비자 보호 관련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분리·개편안이 정부 조직 개편에서 제외되면서 국감에서는 당국의 소비자 보호 기능 관련 대책에 대해 질의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금감원은 현행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소비자 보호 총괄본부'로 격상하고, 각 권역본부는 '민원·분쟁–상품 심사–감독·검사' 등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기로 했습니다. 조직 기능 개편 시점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개정에 맞출 것으로 보입니다. 
 
당국 관계자는 "금융당국 조직개편과 달리 금소법 개정은 여야 이견이 없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 법안 통과에 맞춰 조직과 기능 재편을 시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에 따른 금융사 배상 강화, 상호금융업권 금소법 적용 확대, 편면적 구속력 도입 등 금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금융상품 판매업자 등이 영업 행위 준수 사항을 위반해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고의·중과실은 최대 6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적합성·적정성·설명 의무·부당 권유 위반 시 금융사로의 입증 책임 전환, 중대 위법(적합성·적정성·설명 의무·부당 권유 중 3개 이상 위반 또는 사기적 부정거래) 확인 시 위법계약 취소권 행사 등의 내용도 담겼습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금소법의 범위를 기존 신용협동조합에 더해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산림조합 및 새마을금고까지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김 의원은 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가 명시된 금소법 개정안도 내놨습니다. 
 
편면적 구속력은 분조위 분쟁조정안을 금융소비자가 수락하면 상대방인 금융사가 이를 따르도록 의무화하는 권한입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금융소비자가 불리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현재 분조위 결정은 권고 효력만 갖춰 어느 한쪽이 버티면 결국 소송으로 넘어간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당 이정문 의원도 분조위 결정을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규정하는 금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임직원 결의대회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본비율 떨어지면 소비자도 피해"
 
금감원 안팎에서는 소비자 보호 강화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건전성 감독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은행권에서는 배드뱅크(새도약기금) 출연금과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및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과징금 등 각종 재무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은행권은 ELS 사태로 2조원가량을 자율 배상했지만 과징금 부과 이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면 판매 금액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5대 은행이 판매한 ELS만 14조원이 넘습니다.
 
최근 KB국민은행이 ELS 불완전판매 논란과 관련해 투자자와 벌인 소송 1심에서 승소하면서 과징금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징벌적 과징금 제도 도입을 앞두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과징금 부담으로 은행의 자본건전성과 유동성 공급이 악화되면 금융 시스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과징금을 부과받게 되면 과징금 전액과 과징금의 600%가 추가 위험가중자산(RWA)으로 잡히게 됩니다. 
 
은행권은 그간 건전성 관리를 위해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관리해왔습니다. CET1은 금융사의 보통주 자본을 RWA으로 나눈 값으로, 금융사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실제 조단위 과징금을 받게 되면 RWA가 불어나고, 이는 곧 CET1 하락으로 연결돼 은행의 자본건전성과 유동성 공급 악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국내 은행들은 과징금에 더해 교육세율과 법인세율 인상으로 내년에 추가로 납부해야 할 세금만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생산적 금융'에 투자해야 할 막대한 재원 역시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는 15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하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등 10개 첨단산업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150조원의 자금은 민관 합동으로 조성되는데, 산업은행이 운영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이 75조원을 마련하고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원이 들어갑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자금 마련도 녹록지 않습니다. 은행은 자체 자금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대규모 자본이 빠져나감에 따라 CET1이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재무적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위험 가중치가 높은 대출부터 줄여야 하는데, 결국 기업·신용 대출을 중심으로 문턱을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맹목적으로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감독 업무는 '동전의 양면'으로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를 분리해 나눌 수 없다"며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으로 왜곡되는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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