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강구영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지난 7월 사임한 이후 4개월째 수장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KAI가 올해 대형 입찰 사업에서 연이어 수주에 실패하고 정치권 등의 외부 압박까지 겹치며 리더십 공백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관.(사진=KAI)
최근 KAI는 강 전 사장이 물러난 7월 이후 대형 수주전에서 경쟁사인 대한항공에 연이어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0일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한항공-L3해리스(미국) 컨소시엄을 선정했습니다. 항공통제기는 고성능 레이더를 탑재해 공중에서 지휘·감시·통제를 수행하는 이른바 ‘하늘 위 레이더 겸 지휘소’로 불리는 핵심 전력입니다. L3해리스는 대한항공, 이스라엘 IAI ELTA와 협력해 우리 공군이 요구한 항공통제기(AEW&C) 4대를 2032년까지 공급할 예정입니다. 사업 규모는 약 3조2000억원(23억달러) 수준입니다.
지난 9월에는 ‘전자전기(스탠드오프 재머) 개발사업’ 심의에서도 KAI가 LIG넥스원-대한항공 컨소시엄에 밀려 고배를 마셨습니다. 전자전기는 전시에 전자공격(재밍)을 통해 적 레이더·통신 체계를 교란해 아군 전력을 보호하는 전자전 특화 항공기로, 2034년까지 독자 전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전에 필수적인 무기체계로 평가되며, 총 사업 규모는 약 1조8000억원입니다.
또한 KAI는 내부 경영 리스크와 외부 압박까지 겹치며 ‘수주 부진’ 외에 이른바 ‘외풍’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KAI는 최근 3년간 하도급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기술자료 유용, 대금 미지급, 단가 인하 등 이른바 ‘갑질’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아 지난 3일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도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으나, 구체적 사안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8일에는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KAI 게이트’ 의혹을 제기하며 △스마트팩토리 관련 소송 △소형 무인기 사업 증거 인멸 △지분 투자·비자금 조성 △자문료 특혜 △이라크 수리온 수출 △말레이시아 FA-50 수출과 관련한 마약 연루설 등 6가지 의혹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KAI는 즉각 해명문을 내고 하나하나 반박했지만, KAI 관계자는 “근거 없는 의혹이 이어지면서, 해외 수주에 매진 중인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일의 완제기 생산 기업인 KAI가 수장 공백 장기화로 인해 경쟁력 저하 우려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KAI 차기 사장 선임뿐 아니라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장 인선도 지연되고 있어, KAI 수장 임명이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러한 장기 리더십 부재는 주요 경영 의사결정 지연을 유발하고, 이는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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