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공인이 누구죠?”
대학 복학생 때, 교양 수업 도중 교수가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자, 교수가 자답했다. “사전적 의미로 공인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공인이죠. 흔히 공인이라고 일컫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라 고소득 자영업자인 거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공인 신분을 망각했다’고 자책하는 모습을 늘 봐오던 나는, 이날 교수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돌이켜보면 연예인도 공인이라며 도덕적 기준을 높게 두는 한국 사회에서, 사고를 친 연예인들은 예의 그 ‘공인론’에 따라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돌팔매를 맞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비난의 강도는 매우 거센 편이어서, 몇몇은 삶을 포기할 정도였다. 한때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위가 연예인이고 모든 국민이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 혈안인 연예인 공화국 한국에서, 연예인들은 되레 위태로워 보였다. 언론과 대중은 연예인을 흠모하던 그 입으로 연예인을 물어뜯었다. 일견 모순돼 보이는 이러한 이중성은, 열광과 배반의 사이클을 왕복하는 한국 민주주의와 고스란히 닮았다.
은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배우 조진웅씨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조씨의 전력을 첫 보도한 연예매체는 8년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으나, 그때는 부인했다며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차버렸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유튜브에는 조씨가 배우 생활 동안 수십억 원을 벌어 은퇴해도 먹고살 만하다는 숏츠까지 올라왔다. 스타는 ‘사회의 빛이 되는 존재이자, 사회에 빚을 진 존재’라는 말을 감안하더라도 참 모질구나 싶다. 개그맨 박나래씨와 조세호씨 관련 논란도 연일 화제다. 최근 몇 년 새 이렇게 연예인 관련 이슈가 한꺼번에 터진 적이 있었나. 물론 여기엔 국민이 알아야 할 뉴스보다 알지 않아도 될 뉴스를 보도해온 한국 언론의 병폐가 자리한다. ‘알권리’를 빙자한 황색저널리즘에 ‘알지 않아도 될 권리’를 요구해야 할 지경이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언론 자유보다 언론으로부터의 자유가 구가되는 시대를 산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배우 조진웅이 지난해 1월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영화 <데드맨> 제작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씨에 대한 옹호론을 지지하는 내가 이 국면에서 새삼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다. 나는 다만 우리가 일견 허망한 공인론에 빠져 연예인에 대해 분노할 때, 정작 우리가 분노해야 할 ‘진짜 공인’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의 어리석음을 말하고자 한다. 또한 그 어리석음이 반복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친위 쿠데타 1년, 김건희-윤석열의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던 자들의 가공할 음모와, 위법성을 알았으면서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랐던 ‘공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과연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
난 우리 사회가 조진웅, 박나래, 조세호에 분노하기보다 사법부 독립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더니 정작 계엄 때는 포고문 대로 법원 사무를 계엄사령부에 넘겨주려 한 대법원에 ‘극대노’하길 바란다. 내란 1년이 되도록 사과 한 번 없는 국민의힘에게 분노하길 바라고, 유죄 판결 하나 없는 법원에 분노하길 바란다. 제설 작업도 제대로 못 해 시민들을 밤새 길거리에 묶어둔 서울시장에게 분노하길 바라고, 주권국가인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를 침공하겠다고 협박하는 트럼프에 대해 분노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분노해야 할 대상에 분노하고 있는가.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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