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국제 은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60달러를 돌파하며 올해 대표적 초강세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안전자산 선호와 더불어 인공지능(AI)·전기차·태양광 등 첨단산업에서의 수요 증가, 글로벌 공급 부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가 겹치며 은 시장은 전례 없는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금이 약 59% 상승한 데 비해 은은 연초 대비 100% 넘게 폭등하며 귀금속 시장의 주도권을 사실상 가져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0시40분 기준 은 선물(3월물)은 온스당 62.33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전일 대비 2.12% 상승한 수준입니다. 장중 한때 62.9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다시 쓰는 등 강한 상승 압력을 확인했습니다. 앞서 9일 은 가격은 4% 이상 급등하며 처음으로 60.40달러를 돌파하는 등 강세 흐름을 본격화했습니다.
은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데에는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우선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시장은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12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예상해왔고, 실제 인하가 단행되면서 달러가 약세로 전환됐습니다. 금리 인하는 달러 표시 자산의 매력을 낮추고 귀금속 가격을 자극하는 만큼 은값 상승을 촉발하는 주요 요인이 됐습니다. 스톤엑스 파이낸셜의 로나 오코넬 리서치 책임자는 "투자자들은 확실히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최근 은값 급등의 핵심 동력이 단순한 통화 완화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은은 귀금속이면서 동시에 산업용 금속으로 사용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닙니다. 전기·열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 공정, 전기차 배터리·전장 장치, 태양광 패널, AI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고성장 산업에 필수적으로 쓰입니다. 실버 인스티튜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4년간 산업용 은 수요는 18% 증가했다"며 "특히 인도·중국의 전자·자동차·태양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반면 공급은 제약 요인이 더 뚜렷합니다. 은 생산의 70~80%는 다른 광물 채굴 과정에서 부산물 형태로 발생하기 때문에, 은 가격만 오른다고 즉시 생산량을 증대하기 어렵습니다. 올해 글로벌 은 생산량은 8억1300만온스로 예상되지만 소비는 12억1000만온스로 전망돼 1억8200만온스의 공급 부족이 발생합니다. 세계 최대 은 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의 상하이상품거래소(SHFE) 은 재고는 1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고, 인도에서는 은 기반 ETF 수요가 폭증해 지난 10월 런던 금고에 '역사적 수준의 공급 압박'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정책 요인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은을 핵심광물로 신규 지정하면서 관세 부과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에 대비해 미국 내 은 재고는 역사적 평균 대비 3배 수준까지 확대됐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2조 무역 조치 검토 결과에 은이 포함될 경우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전망하며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투자자들도 은 시장에 적극적으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은선물(H) ETF는 올해 96.6% 상승하며 순자산(AUM) 3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의 연초 이후 누적 순매수는 1360억원에 달합니다. 김선화 삼성자산운용 ETF운용2팀장은 "이번 은 가격 상승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산업 수요 기반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 흐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은을 포함한 귀금속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도 강세를 보이면서 국내 투자 접근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다만 은은 금보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 급등락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실제로 올해 10월 은 가격은 고점 대비 10여일 만에 13.5% 급락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은 가격의 구조적 상승 근거가 충분하지만, 과도한 단기 추종 매수에는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은 가격 예상 범위를 온스당 45~70달러로 기존 전망치보다 상향 조정한다"며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기대와 달러지수 약세 전망이 유지되는 한 투자 매력은 유효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최대 은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재고가 감소하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 부족이 5년 연속 이어질 것"이라며 "전 세계 펀더멘털 측면에서도 은 가격 상승 동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은값 상승 랠리가 이어지고 있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서 직원이 실버바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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