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이명신 기자] 러트닉 하워드 미국 상무장관이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관세 100%’를 예고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국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압박으로, 약 1000조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착공 절차를 밟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일부 팹(Fab)을 미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면서, 결국 정부가 국가 간 사안인 관세 협상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현지 투자 재압박하는 미
최근 미국의 반도체 공장 자국 유치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마이크론 메가팹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만큼, 사실상 두 회사를 겨냥한 발언인 셈입니다.
미국의 ‘자국 내 생산’ 기조는 국내 기업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앞서 미국과 무역 합의를 한 대만의 경우 2500만달러(약 368조원) 규모의 직접투자를 약속했으며, 특히 ‘미국 내에 새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할 때 대만 기업은 시설을 짓는 동안 생산능력 대비 최대 2.5배, 완공한 기업은 1.5배에 달하는 물량이 품목별 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달았습니다. 별도 공장을 짓지 않을 경우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엔비디아, AMD 등 팹리스 기업이 AI 가속기를 설계하고 TSMC와 인텔이 파운드리를 담당하는 구조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메모리 생산을 자국 내에서 완결하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됩니다.
파운드리에 메모리까지 미국으로?
국내 기업들도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메모리 생산시설은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며, 테일러에도 370억달러(약 54조56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다만 두 공장 모두 파운드리 시설로, 인공지능(AI) 경쟁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신규 공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착공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미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부를 미 현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아직 착공하지 않은 삼성전자가 당초 계획한 6기 팹 중 일부를 테일러 유휴 부지에 건설할 수 있다는 구상입니다.
물론 미국 내 생산 확대가 기업 입장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제일 중요한 건, 파운드리든 HBM이든 결국 수주를 받아야 한다”며 “주 고객이 미 빅테크 기업인 만큼, 기술력과 상황 등을 감안해서 투자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다만 단기간 내 추가 대미 투자 검토는 쉽지 않다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이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삼성전자가 약 360조원, SK하이닉스가 600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상황에서 추가 투자 여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용인뿐만이 아니라 평택 등 곳곳의 공장 증설 등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상황”이라며 “각 기업들의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미국 추가 투자의 경우 계획이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관세 100%, 경쟁력 저하 우려
그러나 관세 100%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국산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훼손은 불가피합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주된 고객이 미국 빅테크 기업인데, 관세가 100% 부과되면 결국 구매자가 가격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한국만 메모리를 생산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주 라스트웨피엣의 SK하이닉스 사무소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반면 ‘메모리 3사’ 가운데 한 곳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미국 뉴욕 현지에서 2030년을 목표로 메가팹을 착공하는 등 생산 역량(CAPA)을 확대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쫓고 있습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세계 D램 점유율은 SK하이닉스 34%, 삼성전자 33%, 마이크론 26%로, 마이크론의 추격이 거센 상황입니다.
아울러 미 정부는 마이크론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칩스법(CHIPS Act)을 통해 마이크론의 뉴욕 메가팹 건설에 총 61억6500만달러(약 9조1000억원)의 보조금을 확정했으며, 여기에 더해 국내 기업들을 겨냥한 100% 관세 조치까지 예고하면서 관세를 통한 간접 지원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세 대응, 기업으로서 한계”
결과적으로, 관세 문제는 결국 국가 간 협상 사안인 만큼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유봉영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과 교수는 “메모리라 해도 품목별로 상황이 다른데 관세를 정하는 건 미국이고, 국가와 협의하는 건 기업보다는 국가가 나서줘야 하는 면이 있다”며 “국가가 나서는 게 메인이고, 기업이 서포트해주면서 관세 협의를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산 기업들이 이미 현지에 공장을 착공하는 등의 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협상을 이끌어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약속한 면이 있다. 이 기업에 대한 관세 유예 등 실무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협상을 통해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은 바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정훈·이명신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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