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불길이 중동의 에너지 시설로까지 번지면서 세계 경제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한층 짙어졌습니다. 원유·천연가스를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역시 중동 긴장 고조에 연일 휘청이고 있습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고 육천피를 향하던 코스피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중동발 불확실성이 커지며 실물 경제 전반이 파랗게 질린 가운데, 전쟁 영향으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특히 중동 전쟁이 1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100달러 넘은 유가에…다시 추산하는 성장률 전망치
20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각각 2.0%, 2.1%입니다. 이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62달러를 전제로 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2월28일 중동 전쟁 발발 이후 두바이유는 배럴당 137.82달러, 브렌트유는 103.78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국제유가가 전년 대비 40%가량 상승한 상황인 것입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습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9일 1501.0원에 주간거래를 마쳤습니다. 같은 날 장중에는 1505.0원까지 치솟았는데, 종가와 장중 최고치 모두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10일(1511.5원) 이후 17년 만의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 구조상 유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데, 여기에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급등마저 겹치며 수입물가를 추가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환율발 물가 압력까지 더해진 셈입니다.
상황이 이렇자 올해 우리 경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국내외 주요 기관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다시 추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는 올해 브렌트유 연평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로 급등하면 한국의 성장률이 0.4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올해 두바이유 연평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일 경우 성장률이 최소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0%대 성장률 추락을 경고하는 전망마저 나왔습니다. NH금융연구소는 '이란 전쟁 전개 시나리오별 경영 환경 변화·대응 포인트' 보고서를 펴내고 중동 사태가 1년간 지속되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전쟁이 3개월가량 이어져도 성장률이 연간 약 0.3%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봤고, 조기 종전 시에도 경제 충격이 최소 1개월 이상 지속돼 성장률은 약 0.1~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정부, '성장 자신감→당황 역력'…일단 정책수단 총동원
정부는 지난해 1.0%의 성장률을 올해 반등시킬 수 있다며 연초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반도체 호황에 수출 훈풍을 바탕으로 민간소비 등 내수도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동발 유가 급등이라는 대외 변수가 생기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일단 20년 만에 부활한 석유 최고가격제로 당장 물가 잡기에 총력을 다하며 현안 대응에 바쁘지만, 이 역시도 한시적 대응책에 불과합니다.
정부의 긴장감은 여기저기서 엿보입니다. 재정경제부가 이날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3월호'에는 8개월 만에 '경기 하방 위험'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재경부는 "최근 우리 경제는 소비 등 내수 개선, 반도체 중심 수출 호조 등으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이라면서도 "취약부문 중심 고용애로, 건설투자 회복 속도, 미국 관세 부과 영향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중동 상황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등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물가 상승, 민생 부담 증가 및 경기 하방 위험 증대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경기 하방 위험'이 언급된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입니다. 앞서 정부는 비상계엄 사태 직후 발표된 2024년 12월 그린북에서 '하방위험 증가 우려'를 언급했고, 이후 관련 진단을 이어가다 지난해 8월 이를 삭제했습니다. 8개월 만에 '경기 하방 위험'이라는 표현이 재등장한 것은 기존보다 리스크 경고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중동발 리스크를 오는 4월 세계 경제 전망에 반영할 방침을 밝히며 장기화 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성장 경로를 우려합니다. 댄 카츠 IMF 수석 부총재는 이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최근 중동 상황으로 에너지 가격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세계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의 성장 경로와 인플레이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교역·성장 둔화 우려를 고려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구 부총리는 "중동 상황에 대해 범정부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에너지 수급과 금융·실물경제 전반에 대한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신속한 추경 편성을 비롯해 재정·금융·산업 등 모든 가용한 정책수단을 동원해 우리 경제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댄 카츠 IMF 수석 부총재와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재경부)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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