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최근 일부 은행에서 신용점수가 높은 고객의 대출금리가 저신용자보다 더 높아지는 이른바 '금리 역전' 현상이 생겼습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고신용자 역차별을 넘어 은행 금리 산정 체계가 흔들리는 금융시스템 붕괴 신호로 읽히는 만큼 기존 금리 체계로의 빠른 회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은행권 "수익성 맞추려면 고신용자 금리 올릴 수밖에"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은행권은 취약계층 대상 이자 감면과 정책성 대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이른바 '금융계급제'"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주 중 금융지주회사 임원 등을 소집해 각 지주사의 포용금융 실천 계획을 점검할 예정입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은행권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은행에서는 신용점수 600점 이하 고객의 금리가 601~650점 구간보다 낮게 책정되는 사례까지 확인됐습니다. 여기에 새도약론 등 정책성 상품이 등장하며 저신용자 금리가 급격히 낮아졌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고신용자 금리가 상대적으로 인상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금융권에선 저신용자 금리를 낮추는 과정에서 은행이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고신용자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합니다. 정책성·준정책 금융이 늘어나면서 신용점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소득 등을 기반으로 한 기존 리스크 모델이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금리 역전 현상으로 은행 건전성 역시 경고등이 켜진 상황입니다. 금리는 차주의 위험을 가격으로 반영하는 장치인데, 정책성 금융이 확대되면서 은행이 위험을 가격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회복지 기능이 금융기관으로 전가"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전통적 금리 산정 방식은 위험 프리미엄 원칙을 따른다"며 "신용도가 낮을수록(부도 위험이 높을수록)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것이 시장 원리"라고 말했습니다. 최 교수는 "정책적 요인으로 인해 이 원리가 훼손돼 신용도가 높은 성실 상환자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역차별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며 "이는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 교수는 "은행은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사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양자 사이 균형이 깨지면 금리 체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 원리를 존중하고 금리 산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의 비정상적 금리 상황은 정책성 금융 확대나 취약계층 금융 지원은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시장금리와 정책금리가 따로 노는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습니다. 정책성 대출을 포함한 포트폴리오에서는 기존 모델의 리스크 지표가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왜곡은 단순한 고신용자 역차별 논란을 넘어 금융시장 전체의 가격 신호 기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집니다. 금리가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대출 포트폴리오의 위험가중치, 충당금 산정, 자본비율 계산까지 영향을 받게됩니다. 고신용자 대출 금리가 저신용자 금리보다 오히려 더 비싸지는 현상이 '금리가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경고로 해석되는 이유입니다.
특히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은 재단이나 정부가 사회복지 정책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를 민간 금융기관에 요구하면서 금융의 사회복지 기능이 금융기관으로 전가되는 형태가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강 교수는 "민간 금융기관은 원래 리스크와 수익을 기반으로 이자율을 책정한다"며 "담보가 없거나 신용이 낮은 차주에게는 이자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에는 정부가 책임을 지는 구조가 정상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런데 최근에는 사회복지적 기능이 금융기관으로 전가되면서 시장 메커니즘 자체가 왜곡되고 있다"며 "이는 단순 역차별 문제가 아니라 금리가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는 기능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으로 장기적 금융 안정성에 부담을 준다"고 짚었습니다.
"금리 역전, 디폴드값 되진 않을 것"
다만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은행의 금리 산정 원리는 원래 신용 위험이 큰 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위험 기반 가격 결정이 기본"이라며 "이 구조가 반복될 경우 금리 체계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취약계층 금융 지원의 목적은 한시적 조치이기에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면 재정 부담 급증, 은행의 위험관리 약화, 시장금리 기능의 훼손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금리 역전 현상이 디폴트 값이 될 가능성은 낮지만 정부도 결국 정상적인 위험 기반 금리 체계로 회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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