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 기자] 석유화학, 철강 등 우리나라 기간산업 재편이 시급해진 가운데 구조조정 전문기관으로서 산업은행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그간 산은은 부실기업에 대한 연명 치료에 집중하면서 부실채권 증가, 자금 회수율 저하, 재정 낭비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요.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이 연명이 아니라 재편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부실기업 연명' 아닌 구조조정 시급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업 구조조정에서 주도권을 쥘 산은의 역할 변화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은의 역할 재편은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미 예고됐습니다. 최근 국정기획위원회는 산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며 "전통 제조업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산은이 구조조정 기관으로서 이들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간산업 위기 때마다 부도를 막기 위한 '소방수' 역할을 맡는 것으로는 중장기적인 산업 재편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산은은 그간 부실기업 지분 인수, 법정관리 후 매각 중심의 방식의 구조조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하고도 회수율이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산은이 그간 기업 매각에 성공한 경우 투입된 자금 대비 매각 가격이 낮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STX조선해양(현 케이조선)의 경우 정부와 산업은행 등이 4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2020년 11월 유암코-KHI인베스트먼트에 2500억원에 매각됐습니다. 산은이 2조2300억원을 투입한 금호타이어는 중국 기업인 더블스타에 6500억원에 인수됐습니다. 1조8600억원이 투입된 동부제철은 KG그룹에 3600억원에 매각됐습니다. HMM(옛 현대상선)과 결국 자회사로 품게 된 KDB생명(옛 금호생명)도 매각에 실패한 사례입니다.
전문가들은 부실기업에 대한 반복적인 지원이 국민 세금 기반의 재정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고용 유지를 이유로 부실 산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미온적이고, 채권단은 회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출구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신산업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금 흐름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간산업 전환' 촉진자 역할 필요
산은이 단순한 자금 공급자가 아니라 산업 혁신을 촉진하고 산업 재편을 마련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주문인데요. 현재 산업 차원에서 구조조정 필요성이 시급한 업계는 석유화학입니다.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170), 등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원가 부담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 산업 재편의 핵심은 주요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과잉 설비를 줄이고 통폐합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사업을 축소하거나 자산을 정리하며 자구 노력을 이어가지만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산은 등 구조조정 전문 기관은 석유화학 기업들이 여전히 '정상 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강력하게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전문가들은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이 부실기업 관리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산업 전환을 설계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현재 정부는 철강·석유화학·2차전지·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관세정책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구조혁신펀드 조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기관 재원을 마중물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자하는 민간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기업구조혁신펀드 취지입니다. 또한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2차전지, 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첨단전략산업기금' 신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간 저리대출으로 제한되던 정책금융기관의 금융 지원이 지분투자와 후순위 보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부가 조성하는 기금을 활용하는 산은이 철강·석유화학 등 고탄소 산업의 체질 개선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산은은 녹색채권 누적 발행액이 2조원 이상으로 금융권 중 최다 발행 기관인데요. 녹색채권을 실질적인 기간산업의 기술 전환 프로젝트나 설비 재편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산은 내부의 구조조정 인력과 조직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정부가 특정 산업을 살릴지 말지를 결정하고 산은이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고도화시킬지 구상해야 한다"며 "산은 내 산업별 전문심사팀, 기술평가 조직 등 구조조정 조직을 확대하고 산은인베스트먼트 등 투자금융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간산업 재편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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