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100% 관세’를 예고한 지 하루 만인 7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면 무관세”라며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와 건설 준비 중인 SK하이닉스가 관세 면제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관세 범위와 반도체 품목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한 실정입니다.
주요 반도체 기업 미국 투자 현황. (그래픽=뉴스토마토)
러트닉 장관은 이날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동안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의 임기 중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상무부에 신고한 뒤 건설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받을 경우 공장을 짓는 동안에는 관세 없이 반도체를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미국에 투자하면 반도체 관세를 면제하고, 투자하지 않는 기업에 더 공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거나 생산을 약속한 기업은 고용·생산 규모에 관계없이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를 독촉한 바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관세 면제 가능성을 전망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달러(약 51조원)을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관세 면제가 확실해진다면 건설 필요성도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만 역시 비슷한 시각에서 TSMC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으리라고 전망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장관급)은 의회 브리핑에서 “대만의 주요 수출기업이자 미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TSMC는 (반도체 관세에서) 면제된다”고 자신했습니다. TSMC가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1공장을 가동 중이며, 2·3공장의 건설을 위해 총 1650억달러(약 228조8100억원)를 투자한 만큼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사진=뉴시스)
다만 공식 발표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상무장관의 발언이 전부인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합니다. 관세를 매기는 품목이나 범위가 불명확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삼성전자는 화성·평택 캠퍼스,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HBM은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없는 만큼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관세 부과 여부가 모호한 것입니다.
또 반도체 제품이 해외를 거쳤을 때의 관세 부과 여부도 불명확합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 비중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율은 7.5%에 그쳤습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HBM이 대만 TSMC를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는 것처럼, 중간에 타국을 경유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더 낮게 집계된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주요 품목에서 초고율 관세가 현실화할 수도 있는 만큼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워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마냥 허황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며 “반도체 100% 관세 부과가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건지, 최혜국 대우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건지 한 번 더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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