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 안보 주권 강화에 도움 된다
경주 한·미 정상회담 통해 '30년 숙원' 해결 실마리
북한 핵 무력 위협 대비 자체 억지력 강화 의미
주변국 관계 개선과 군사 역량 확보는 병행할 과제
한·미 전략동맹 강화와 함께 안보 의존 줄이는 자주국방 효과도
2025-11-11 06:00:00 2025-11-11 06:00:00
2025년 10월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한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건조를 공식화했습니다. 
 
한국은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공식, 비공식으로 원잠 건조를 모색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핵연료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고, 미국이 완강하게 반대해서였죠.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뜻을 한국이 거스르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테 "핵추진잠수함에 필요한 연료(농축우라늄)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음 날 트럼프는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 2월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해군은 디젤 엔진 잠수함을 여러 척 갖고 있습니다. 디젤 잠수함은 연료를 태울 산소를 얻기 위해 물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한국 잠수함이 우수한 공기불요장치(AIP)를 탑재해도 최장 3주만 잠항할 수 있습니다. 원잠은 연료만 볼 때 무한대로 잠항할 수 있으며 속도와 잠항 깊이도 훨씬 우월합니다. 적의 위협을 억제하는 강력한 전략 자산이죠. 
 
원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인도 정도입니다. 한국이 이 자산을 보유하면 세계 7번째가 될 수 있죠. 다른 나라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안보를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안보 주권이란 말을 쓰는데요. 원잠을 보유하면 안보 주권이 훨씬 강해집니다. 
 
물론 우리 경우는 핵무기를 탑재하는 것은 아니고, 원자력 물질을 엔진 동력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원자력을 동력으로 쓰고 핵무기도 잠수함에 싣는 다른 핵잠수함 보유국과 조금 다릅니다. 
 
원잠을 만들면 세 가지 차원에서 안보 주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북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사실상 보유했고, 원자력추진잠수함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국은 북한보다 우월한 재래식 전력을 기반으로 북한 위협을 억제하며, 유사시에는 미국이 핵무기 등으로 보복 공격한다는(확장억제) 이중 잠금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군은 현무5 등 정밀 타격무기를 꽤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 위협을 상당 수준 억제할 수 있습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말이 꼭 맞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믿기 어렵다고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일부 보수 정치인은 불안 심리에 올라타서, 미국 핵무기를 한국이 공유하자는 핵 공유론을 주장했죠. 미국이 절대 무기인 핵무기 이용권을 남한테 줄 리 없는데 말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 촬영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두 나라는 원잠 건조 승인과 함께, 우라늄 농축과 핵물질 재처리 허용도 협의하기로 했다고 우리 외교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겠지요. 이 경우 한국은 원자력 이용 능력을 확 끌어올리게 됩니다. 핵무장은 아니지만, 이것도 의미가 큽니다. 안보와 경제, 산업 연관 효과가 상당하죠. 무엇보다 북한 위협 대비 능력이 커지며, 국민 불안감을 많이 줄일 수 있겠죠. 
 
둘째, 주변국 관계에서 우리 교섭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중국은 최근 항공모함 건조를 비롯해 해군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남중국해에선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죠. 일본은 평화헌법 체제에서 방어에 집중하던 과거 태도를 바꿔, 공격 능력을 급속히 증강하고 있습니다. 적 기지 공격 권한을 자위대에 부여하는 법제를 정비했고, 장거리 순항 미사일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그릇되게 우기고 있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인지 동북아시아 군사 활동은 소강상태입니다. 
 
우리는 이들 주변국과 모두 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먼저 방문했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이어 이 대통령도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외교 노력과 별개로 군사 역량은 그것대로 갖춰야 합니다. 국제 관계는 정글과 같습니다. 힘을 갖추지 않으면 무시당하기 쉽죠. 군사력이 만능은 아니지만, 필요한 힘을 갖춰야 주변국 관계에서도 교섭력이 커집니다. 
 
셋째, 외국에 안보 의존을 줄이는 자주국방 효과가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동맹을 참여시킨다는 차원에서 한국에 원잠 건조를 승인했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의도를 잘 이해해둘 필요가 있죠. 
 
하지만 우리가 원잠 같은 전략 자산을 갖춘다고 해서, 유사시 미중 간 대결에 기계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언제든 한국은 자주적인 결정을 해야 하며, 할 수 있을 겁니다. 비슷한 예가 있죠.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행 선박을 공격하자 미국이 '번영의 수호자 작전' 부대를 다국적군으로 구성하려 했죠. 영국을 제외한 대다수 나토 동맹국들은 이 제안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원잠 같은 전략 자산을 확충하면 특정 국가에 대한 안보 의존이 줄겠죠. 자주국방은 중요합니다. 외교나 경제, 통상 등 경제 안보 자율성도 덩달아 커집니다. 
 
원잠을 만들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최소 10년은 걸리며 불확실성이 많죠. 주변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요. 난제가 숱하죠. 하지만 안보 주권을 강화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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