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장기배양 뇌, 저절로 성숙할까
뇌 오르가노이드, '시간 흐름'의 기록
하버드 연구팀, 뇌 발달 연구 '전환점'
2025-11-12 06:00:00 2025-11-12 06:00:00
오르가노이드(organoid)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는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축소판 장기 모사체’를 말합니다. “실험실 안에서 자라나는 인간의 뇌 조직(brain organoid)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성숙할 수 있을까?” 하버드 의대 줄기세포·재생생물학과 파올라 아를롯타(Paola Arlotta) 교수 연구팀은 인간 줄기세포로 만든 뇌 오르가노이드를 오랫동안 배양하여 이 조직들이 마치 사람의 뇌처럼 시간의 흐름을 세포 수준에서 ‘기록’한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노엘리아 안톤-볼라뇨스(Noelia Anton-Bolaños)와 이레네 파라벨리(Irene Faravelli)가 촬영한 인간 대뇌 피질의 오르가노이드 이미지. (사진=하버드대)
  
이 연구는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예비 논문으로 실리자마자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칼럼니스트 칼 짐머(Carl Zimmer)도 이 연구를 조명하며, 오르가노이드 연구가 점점 더 뇌의 특정 발달 단계를 충실히 모사하고 있으며 인간 발달을 재현하는 새로운 지평에 도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뇌 오르가노이드, 세포적 시간 감각 확인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전례 없이 긴 배양 기간입니다. 기존의 오르가노이드 연구가 보통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에 끝났던 것과 달리, 아를롯타 연구팀은 오르가노이드를 2018년부터 배양하며 세포의 변화 과정을 면밀히 추적했습니다. 
 
연구팀은 세포가 장기간 생존할 수 있도록 산소 공급과 영양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했습니다. 그 결과 오르가노이드 내부에서 다양한 신경세포들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경세포를 배양하는 동안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떤 유전자들이 켜지고 꺼지는지 단일세포 수준에서 추적하는 ‘전사체 분석’(transcriptome profiling)을 실시했습니다. 전사체는 특정 세포나 조직에서 특정 시점에 발현되는 모든 RNA 분자의 총합을 뜻합니다. 분석 결과 신경세포와 교세포 등 각 세포형이 배양된 시간에 따라 점진적으로 ‘성숙’해 가는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정 유전자의 발현 정도는 실제 인간 뇌 발달의 연령 단계와 놀라울 만큼 일치했습니다. 예를 들어, 흥분성 뉴런에서 시냅스 형성 관련 유전자의 발현은 배양 초기에는 낮았으나, 3년 이상이 지나면서 인간 신생아나 유아기의 수준에 근접했습니다.
 
연구진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화학적 표지(chemical marker)인 에피제놈(epigenome) 분석을 통해 세포가 ‘시간’을 화학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발견했습니다. 연구진이 ‘DNA의 메틸화 분석’(methylation profile)을 해본 결과, 오르가노이드의 분자적 나이가 실제 배양된 기간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오르가노이드 속 세포들은 단순히 살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세포 내부의 화학적 변화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오래된’ 오르가노이드에서 얻은 신경 전구세포(neural progenitor cell)를 ‘젊은’ 오르가노이드 환경에 이식했을 때의 반응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오래된 세포들은 새 환경에서도 자신이 이미 성숙한 세포임을 기억하듯, 빠르게 후기 신경세포(late-stage neuron)로 분화했습니다. 이는 세포 내부에 시간이 남긴 분자적 기억, 즉 일종의 ‘세포적 시간 감각’이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뇌 발달, 뇌 질환 모델의 전환점
 
실험실에서 자란 오르가노이드가 단순한 초기 태아 수준의 모델을 넘어, 인간 뇌의 장기적 성숙 과정을 모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뇌 발달 연구와 질환 모델링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조현병처럼 발달의 특정 시기에 기원이 있는 질환을 연구할 때, ‘시간의 경과’를 반영한 모델은 이전보다 훨씬 정밀한 비교와 관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처럼 장기간 배양된 오르가노이드는 단순히 세포가 오래 살아남았다는 기술적 성취를 넘어, 인간 뇌의 ‘성숙의 리듬’ 자체를 실험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에서 확인된 ‘분자적 나이 표지자’(molecular age marker)는 인간의 발달 시계가 세포 내부의 유전자 발현과 후생유전적(epigenetic) 변화를 통해 조율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즉, 오르가노이드의 세포들은 주변 환경의 지시 없이도 내부 시계를 따라 ‘늙어가며’ 발달 단계를 밟는다는 것입니다.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 의대 줄기세포·재생생물학과의 파올라 아를롯타(Paola Arlotta) 교수. (사진=하버드대)
 
이러한 결과는 1980년대 파스코 라키치(Pasko Rakic) 이후 제기되어온 인간의 두뇌 발달이 외부 자극이나 환경적 경험뿐 아니라, 세포 고유의 내적 시간 프로그램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문은 동료 심사 이전의 예비 논문(preprint)입니다. 따라서 데이터 해석과 통계적 검증, 그리고 재현성 평가가 남아 있습니다. 연구진 역시 논문 서두에서 이 연구가 가능성이 있는 시험관 모델(in vitro model)이라고 한계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르가노이드는 혈관, 면역세포, 내분비 신호, 감각 입력 등 실제 생체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생리적 상호작용이 배제된 시험관에서 배양된 뇌 조직입니다. 따라서 오르가노이드 내부에서 나타나는 시간 기록 현상이 자연적 발달을 그대로 모사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장기간 배양 환경에 적응한 세포들이 생존 스트레스에 반응한 결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장기간 배양에서 살아남은 세포들이 특정 계통(예를 들어 스트레스에 강한 세포형)에 편향될 수 있어, 전체 발달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세포가 실제 인간의 뇌처럼 복잡한 신경망을 구성하고, 자극에 반응하며,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도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사 역시 이를 지적하며 “이 조직들은 뇌를 닮았지만, 뇌는 아니다”라는 연구팀의 신중한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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