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세이온페이 도입 검토…"정부가 통제하겠단 뜻"
2025-11-11 14:27:34 2025-11-11 16:56:44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세이온페이(Say-on-Pay)' 제도가 금융사에 대한 정부 통제력만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주요 금융지주사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인 상황에서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사실상 정부가 금융권 보수 체계를 쥐고 흔들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성과급 잔치 제동' 부실한 명분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임원 보수에 대한 주주통제 제도인 세이온페이 법제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부가 이 제도를 꺼낸 배경에는 시중은행들의 잇단 성과급 논란이 있습니다. 지난해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단의 연간 보수는 평균 15억~22억원 수준이었습니다. 같은 해 10개 금융지주의 연결당기순이익은 총 23조8000억원에 달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이익이 폭증한 가운데 수십억 원대의 임원 성과급이 쏟아진 셈입니다. 
 
금융당국은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산업에서 과도한 보수는 문제"라며 제도 도입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과급의 투명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주주 감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선 선진국의 사례와 달리 한국의 금융권 지배구조는 특수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세이온페이 도입 이후에도 의결 과정에서 다양한 기관투자자와 개인주주가 균형을 이루지만, 국내 금융사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대부분 주요 금융사 최대주주입니다. 신한금융 지분 9.3%의, KB금융 8.3%, 하나금융 8.8%를 각각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세이온페이가 시행되면 금융사 임원 보수가 주주총회에서 결정되기보다는 정부가 승인해야 하는 구조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입니다. 
 
정기주주총회를 알리는 알림 문구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소액주주, 의결권 영향력 미미
 
현재 국내 금융지주의 주주 구성은 외국인 투자자가 평균 60%, 국민연금이 8~10%, 나머지가 소액주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의결권 행사에서는 국민연금이 절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는 대부분 장기투자 목적이라 의결권 행사율이 낮고, 결국 정부의 의중이 금융사 경영에 반영되는 구조"라며 "세이온페이는 명목상 주주권 강화지만 실질적 통제 강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금융사가 올린 보수안을 정부가 납득하지 않으면 통과가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했습니다. 
 
일반 소액주주는 의견을 낼 통로조차 제한적인데 온라인 의결권 시스템이 있어도 복잡한 절차 탓에 참여율이 극히 낮고, 단체 주주행동을 조직할 여력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주주 권한 강화'라는 원래 취지와 달리 대주주 중심의 결정 구조만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국민연금이 사회적 책무를 이유로 정부 기조에 맞춰 의결권을 행사하면 주총은 견제가 아닌 승인 절차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해외에서도 정부 개입은 최소화합니다. 영국의 경우 주주총회 결의가 자문적 효력에 그치며, 미국도 일정 규모 이상만 공시 의무가 있습니다. 반면 한국형 세이온페이는 강제 의결 형태로 추진돼 '국가 주도의 임금 규제'로 변질될 소지가 크다는 시각이 적잖습니다. 
 
정당한 성과 보상 제약될수도 
 
일각에선 세이온페이가 시행되면 금융사 보수 승인 과정이 사실상 행정 절차화될 가능성마저 제기합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범위가 확대되면 정부가 납득하지 못하는 보수안은 주총에서 통과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까지 주주총회 결의로 묶이면 금융권의 독립성은 한층 더 약화할 수 있습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결국 금융당국이 '보수도 정책 관리 범위에 두겠다'는 의미로 읽힌다"며 "정부가 금융사 인사와 급여까지 통제하면 시장 자율성은 완전히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세이온페이가 취지와 달리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성과를 낸 임원에게 시장 수준의 보수를 주지 못하면 우수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제도 설계가 오히려 금융 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세이온페이가 정부 영향력하에서 시행될 경우 투명성 강화가 아니라 명분 있는 간섭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습니다. 보수 수준이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조정할 필요가 있지만, 그 권한을 정부가 쥐는 것은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입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현재 각 임원별 보수 내역은 공시로 공개돼 있어 투명성은 일정 부분 확보되고 있다"면서 "주주총회에서 총액 결의와 공시만으로도 충분하며 정부가 추가로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에서는 이미 주주총회에서 보수 총액을 결의하고, 개별 임원의 배분은 이사회에서 결정된다"며 "실제 집행액은 책정된 총액보다 낮게 지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대표이사가 모두 가져가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친 통제는 자본시장 신호를 왜곡하고 금융 기업의 독립적 운영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비판 여론이 적지 않지만 세이온페이 제도가 금융사 임원 보수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진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보수 수준이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되면 경영진은 단기 수익보다 지속 가능한 경영에 더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또한 금융권의 폐쇄적 문화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지금까지 임원 보수는 내부 보상위원회에서 결정돼 외부 감시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