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주문한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치를 넘지 않기 위해 은행권이 분주합니다. 일부 영업점에서는 지점장 재량으로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전결금리'를 신용대출에는 적용하는 반면 주택담보대출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말까지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에도 이런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감조정금리 차별 적용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 격차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규제와 총량 관리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주담대 금리는 꾸준히 오른 반면, 신용대출 금리는 낮아진 영향입니다.
지난달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신용 1등급(951~1000점)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4.17%로, 같은 신용도의 주담대 금리(4.10%)와 0.07%p 차이가 났습니다.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전달 금리차가 0.13%p인 것을 감안하면 한 달 새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주담대는 부동산 등을 담보로 잡기 때문에 상환 위험이 덜해,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통상 1~2%p 낮습니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안전한 자산을 담보로 하는 주담대는 무담보인 신용대출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최근 들어 금리 격차가 축소되거나 오히려 역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부의 연이은 가계대출 규제 영향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부가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부채 관리를 요구하면서 은행들은 주담대 금리를 높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5대 은행의 주담대 평균 금리(1등급 기준)는 지난 6월 3.9%로 저점을 찍고 5개월 연속 상승 중입니다.
금리 인하기에 주담대 금리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은행채 금리와 코픽스(COFIX) 등 시장·조달금리를 반영한 '지표(기준)금리'에 은행들이 임의로 덧붙이는 '가산금리'를 더한 뒤 은행 본점이나 지점장 전결로 조정하는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서 계산합니다.
실제로 은행권 영업점에서는 현재 전결 금리를 신용대출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오랜 기간 거래를 이어온 차주를 대상으로 대출 연장때 재량거래를 오래 이어온 우수 차주를 대상으로 지점장 재량으로 대출금리를 깎아주고 싶지만 주담대 규제로 인해 제한적"이라고 전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겠다고 하면 재량권을 발휘해 금리를 더 깎아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은행권 영업점에서 지점장 재량으로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이른바 '전결금리'를 신용대출에는 적용하는 반면 주택담보대출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의 영업점 모습. (사진=뉴시스)
신용대출 한 달 새 1.5조 증가
주담대 증가 폭은 꺾였음에도 신용대출은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66조3718억원으로 한 달 새 2조2769억원 증가했습니다. 지난 9월 증감액(1조1964억원)의 2배에 달합니다
지난달 주담대 증가 폭은 1조2638억원으로 지난 9월 1조3134억원보다 줄었는데,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작은 증가 폭입니다. 반면 지난달 신용대출 잔액은 1조519억원이 증가습니다. 지난 8월 증가 폭은 1103억원에 불과했고 9월에는 2711억원 줄었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이미 연간 가계대출 목표치를 초과한 곳도 있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말이 가까워지자 대출 문을 걸어잠그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신한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120%, NH농협은행은 109%로 목표치를 초과했습니다. 이들 은행은 대출 상환분 등을 감안해 100% 수준을 맞춘다는 방침입니다.
은행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대출모집인(상담사) 채널을 통한 접수를 일제히 중단했습니다. 신한·하나·NH농협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은 지난 4일부터 올해 실행하는 대출의 신규 신청을 막았습니다. 우리은행은 모집법인별 한도를 두고 신청받지만, 이달부턴 영업점별 부동산금융상품(주담대·전세자금대출) 판매 한도를 월 10억원으로 제한했습니다.
그러자 대출모집인 제동을 넘어 금리 조정이나 비대면 대출 중단 등의 관리 조치가 내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은행이 주담대 접수를 틀어막자 대출 공백을 메우려는 우회 움직임은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차주는 벌써 내년 1월 실행할 예정인 대출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연내 대출받기가 어렵고, 내년에도 가계대출 문턱이 높을 수 있다는 우려에 미리 은행의 한정된 대출 공급분을 선점하고 나선 것입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내년 대출 총량을 얼마나 부여받을지 알 수 없는 점도 연초 은행의 보수적인 가계대출 취급에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올해 가계대출 총량을 초과한 은행은 내년도 총량에서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자칫 연초부터 주담대를 크게 늘렸다가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 속도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대출 절벽 현상에 풍선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대출을 막으니 신용대출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라며 "특정 대출 쏠림을 방치하면 가계대출 정책 효과가 오히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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