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 꾸준 지적돼온 주식 저평가 유지 및 상장폐지 저가 공개매수 문제가 사조그룹과
SK디앤디(210980) 사례를 통해 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기업과 대주주는 이 과정을 통해 지배력 강화와 구조조정 비용 절감이라는 실익을 얻는 반면, 일반주주는 정당한 기업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회수 기회를 강요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상속증여세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상장폐지 단계의 가격 규율은 여전히 비어 있어 자본시장법 차원의 추가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사조그룹 지분 급증…지배구조 재편설 의혹 커져
사조그룹 계열사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3~0.6배 수준의 저평가 상태입니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가치로 나눈 지표로, 1 미만이면 장부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간에서 지분을 늘리면 대주주는 적은 비용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반면, 일반주주는 기업 가치와 무관하게 낮은 가격에 구조조정 과정에 편입될 위험이 커져 재산권 침해 우려가 커집니다.
사조그룹 전 계열사에서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동시에 상승한 흐름은 단순한 방어라기보다 지배구조 전반의 재편을 염두에 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향후 상장폐지나 합병, 지주사 정리 등 다양한 조직개편 시나리오의 여지를 미리 마련하려는 사전 정비 작업이라는 겁니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과거에는
BYC(001460)처럼 계열사별로 지분을 쪼개 감사위원 선임을 막는 방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모두 3%로 합산하는 규정이 적용돼 이런 우회 전략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조오양처럼 자본조달 수요가 크지 않은 성숙산업 계열사는 상법·자본시장법 규제 강화로 상장유지 부담이 과거보다 크게 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SK디앤디, 프리미엄 없는 공개매수 논란
유사한 문제는
SK디앤디(210980)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는 10월 한 달간 SK디앤디 상장폐지를 목표로 공개매수를 진행했지만 목표 지분율을 확보하지 못하자, 이달 3일부터 동일한 가격으로 재차 공개매수에 나섰습니다. 10월 평균주가는 1만2678원인데 공개매수가격은 주당 1만2750원으로 사실상 차이가 없고, PBR도 0.39배로 순자산가치의 40%에도 못 미치는 저평가 상태입니다. 상장폐지는 구조적으로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인 만큼 통상 높은 프리미엄을 붙이는 것이 관행이지만, 이번 공개매수 가격은 그 기준에 크게 못 미칩니다.
최근 국내 상장폐지형 공개매수 사례를 보면, 5월 한솔피엔에스는 공개매수 당시 직전 3개월 거래량 가중평균주가 대비 55.1%, 8월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48.8%의 프리미엄을 적용했습니다. 신성통상 역시 지난해 6월 20.0%라는 낮은 할증률로 공개매수를 진행했다가 주주 응모 부진으로 실패했고, 66.6%로 프리미엄을 대폭 높인 올해 7월 상장폐지가 성사됐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SK디앤디의 직전 3개월 주가 대비 약 15.3% 수준의 프리미엄은 시장 평균보다 크게 낮은 편입니다.
"헐값 상폐" 못 하게…상속증여세·자본시장법 개정 논의 본격화
국회에서는 대주주가 낮은 주가를 통해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는 관행을 막기 위한 법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루어지는 기업들의 경우 사업적 목적 외의 석연치 않은 계열사 간 주식매매 및 유상증자, 합병, 분할 등을 통해 주가 저평가를 유도한다"며 PBR 0.8배 미만 상장사에 대해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을 적용하고 평가 하한을 순자산가치의 80%로 설정해 저평가 유지 전략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법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주식이 저평가된 상태가 유지될수록 대주주가 더 큰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외 박민규 민주당 의원은 상속증여세 계산 시 상장주식의 평가액이 순자산가치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주가가 순자산가치보다 높은 기업 대주주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속증여세 제도 개선만으로는 상장폐지 단계에서 발생하는 소액주주 피해를 막기 어렵습니다. 장기간 저평가된 기업이 상장폐지를 추진할 경우 공개매수가가 순자산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을 제한할 직접적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회계 전문가는 "상장 단계에서는 고평가를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상장폐지 단계에서는 저평가를 이용해 지분을 헐값에 회수하는 흐름이 고착화돼 있다”며 “자진 상장폐지 절차에서도 최소 가격 하한선을 두거나 외부 평가기관의 공정 가치 평가를 의무화하는 등 자본시장법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인 노종화 변호사는 "상장폐지처럼 지배주주와 소수주주의 이해가 직접 충돌하는 사안에서는 소수주주가 추천한 인사를 포함해 독립성이 보장된 특별위원회가 전 과정을 검토하고 거래 조건까지 최종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주총 의결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해관계가 있는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은 표결에서 배제하고, 소수주주만으로 과반 결의를 하도록 하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정책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이 마무리되면 자본시장법·거래소 규정·스튜어드십 코드 전반을 손보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알고 있다"이라며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상장폐지 공개매수 가격 산정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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