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비상에 당국, 증권사 '옥죄고' 서학개미 '당근'
해외주식 매각 시 양도세 감면 추진…자금 국내 유턴 유도
관련 마케팅 줄줄이 종료…업계 전반 '보수화'
혜택은 줄고 정보도 위축…투자자 체감 불만 확산
2025-12-24 15:15:50 2025-12-24 15:45:35
[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되자 정부가 개인투자자에게는 세제 혜택을 내걸어 국내 증시 복귀를 유도하고, 증권사에는 해외주식 영업과 마케팅 자제를 요구하는 투트랙 대응에 나섰습니다. 해외주식을 팔아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해외주식 이벤트와 광고, 정보 제공 채널까지 사실상 제동을 걸었습니다. 환율 안정을 명분으로 한 정책이 증권업계 영업 전반과 투자 환경까지 흔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3원 오른 1484.9원에 개장했습니다. 그러나 개장 직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자 환율은 빠르게 하락세로 전환돼 장중 한때 1460원대까지 밀렸습니다. 불과 짧은 시간에 20원 가까이 급락한 것입니다.
 
24일 기획재정부는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에 1년간 투자하면 해외주식 양도세(20%)를 1년간 면제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김재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윤경수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이날 공동 메시지를 통해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종합적인 정책 실행 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언급을 넘어 추가 대응 가능성까지 열어둔 경고성 발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날 당국은 경고와 함께 개인투자자를 겨냥한 유인책도 동시에 꺼내 들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국내 투자·외환 안정 세제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해외주식을 매각해 국내 주식에 장기 투자할 경우 해외주식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 자금을 국내 시장으로 되돌려 외환시장 안정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동시에 노리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 같은 정책 기조 변화는 증권사 영업 현장에서도 즉각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리츠증권(008560)은 해외주식 수수료 정책과 관련해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한 무료 수수료 혜택을 연초부터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현재 전산 시스템과 업무 절차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검토가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시행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해외주식 이벤트 종료는 이미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메리츠증권은 12월18일을 기점으로 해외주식 관련 이벤트를 모두 종료했습니다. 키움증권(039490)은 '우리아이 미국주식 더 모으기', 해외주식 거래 수수료 및 환전 우대 이벤트 등을 지난달 말로 마무리했고, 유진투자증권(001200) 역시 미국주식 수수료 무료 및 해외주식 순입고 이벤트를 이달 19일부로 종료했습니다.
 
삼성증권(016360)은 신규 고객 대상 현금성 '투자 지원금'을 중단했으며, 토스증권은 수수료 환급 이벤트의 참여 요건을 변경해 해외주식 거래를 제외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006800) 역시 해외주식 신규 이벤트와 현금성 프로모션을 중단하거나 일시 중단하며 해외주식 영업 기조를 전반적으로 보수화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위축은 정보 제공 채널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23일 키움증권은 최근 구독자 수 기준 업계 1위였던 미국 주식 텔레그램 채널의 운영 종료를 예고했습니다. 해당 채널은 미국 주식 시장 동향과 종목 정보를 제공해온 대표적인 서학개미 소통 창구로, 수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업계에서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정보 제공까지 마케팅으로 폭넓게 해석될 경우, 증권사들이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소통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다수의 투자자가 모인 정보 채널이 불완전판매나 과당 경쟁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졌다는 설명입니다.
 
키움증권은 23일 텔레그램 채널 '키움증권 미국주식 톡톡'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키움증권 미국주식 톡톡 캡처)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해외주식 중심으로 플랫폼과 서비스를 재편해온 증권사일수록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옵니다. 해외주식 거래 확대를 염두에 두고 시스템과 인력을 준비해온 상황에서, 정책 기조 변화로 마케팅과 서비스 노출이 동시에 위축될 경우 중장기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마케팅을 하지 않더라도 해외주식 투자 수요 자체가 꺾일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당국 압박 속에서 업계가 일제히 속도를 늦추는 국면에 들어선 것은 사실"이라며 "정책적으로는 환율 안정을 위한 조치지만,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가 체감하는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개인투자자들의 체감 반응은 냉랭합니다.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와 주식 관련 카페에서는 "해외주식 이벤트 때문에 투자한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혜택과 정보만 줄었다", "환율이 문제지 마케팅이 문제였느냐", "투자 판단의 책임은 개인에게 남겨두고 환경만 불리해졌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보 제공 채널 축소와 관련해 "이제 뭘 보고 판단하라는 거냐"는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해외주식 과열을 막겠다는 취지와 달리,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 접근까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한 법학과 교수는 "수수료 혜택과 각종 투자 지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증권사를 통해 제공되던 검증된 정보와 신뢰 기반 자료까지 위축될 경우 투자자는 이중의 불리함을 겪게 된다"며 "오히려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유사 투자자문이 시장을 잠식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투자자 보호 논의를 넘어, 환율 안정을 둘러싼 정책 수단의 균형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고환율 국면에서 당국이 환율 안정 신호를 시장에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증권사 영업과 정보 제공까지 함께 조이는 방식이 지속될 경우 부작용이 누적될 수 있다"며 "환율 대응과 자본시장 기능을 분리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