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⑨)낚시 다녀온 아줌마와 술을
2026-01-01 10:49:26 2026-01-01 19:05:15
기온이 급격히 내려갈 때마다 부고 소식이 잇따른다. 대체로 연로한 부모 세대들이 돌아들 간다. 윗세대가 아니면 또래도 있고 더러는 젊은 후배들도 있다. 너무들 간다. 결혼식보다는 장례식 가는 횟수가 훨씬 많은 걸 보면 확실히 인구가 줄고 있다는 걸 느낀다. 백일잔치가 없어진 건 허례허식의 문제가 아니라 애들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상갓집 풍경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바닥에 앉는 좌식용 테이블은 거의 사라졌고(인구 상당수가 허리 디스크나 고관절 질환의 잠재적 위험군에서 벗어나게 됐다) 밤새워 고인을 추모하는 풍습도 먼 지방 시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됐다. (어디서 구했는지) 군용 담요를 깔아 놓고 화투장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이제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싸움도 없어졌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다. 많이들 차를 끌고 온다. 적당한 인사와 적당한 슬픔을 나눈다. 대체로 아흔을 전후해 돌아가시는 분들이고 그래서 약간은 호상 분위기다. 스몰 토크들, 오랜만에 나누는 소식들로 약간 흥겹기까지 하다.
 
장례문화를 다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포스터. (사진=태흥영화사)
 
술꾼들에게 장례식장은 그래도 역시 술이다. 종이컵은 커피잔 용이 있고 소주잔 용이 있어서 소맥을 말기에는 조금 그런 감이 있지만 그런대로 자작하기에는 나쁘지 않다. 초상집에서는 술을 서로 따라 줄 필요도, 술잔을 부딪칠 필요도 없다. 조용히 자기 거 자기가 알아서 따라 마시는 게 좋다. 초상집 안주로는 동그랑땡이 포함된 모둠전이 있고, 돼지머리편육과 가오리회무침, 김치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이다. 대체로 육개장을 내놓지만, 무가 들어간 북어해장국이 나오는 곳도 있고 드물게 우거지탕을 내놓는 곳도 있다. 노환으로 돌아간 고인의 장례식장이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종이컵으로 맥주 가득, 소주 약간씩을 가끔 (매번 말고) 섞어서 두어 시간 보내면 정신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의자 아래 바닥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때쯤 일어서는 게 좋다. 장례식장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건 이제는 사회적 금기다. 이상한 곡소리를 내는 것도 촌스러운 짓이다. 슬픔은 과장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 사회엔 그간 이상한 죽음이 너무 많았다. 개인의 슬픔이 사회적 슬픔의 벽을 넘어가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축제>는 전남 장흥에서 찍었다.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로 임권택 감독은 당시 최고 흥행 감독이었다. 그가 한국 전통 장례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를 찍겠다고 했다. 1996년의 일이니 딱 30년 전이다. 기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렸다. 장흥의 남포마을(장흥군 용산면)의 한옥에서 찍었는데 거기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한참 구불구불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마을 어귀 어딘가에 멈춰 섰고 다들 우르르 몰려 들어갔는데 이게 영화 촬영장을 찾은 건지 관광단으로 몰려다니는 건지,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한바탕 난리굿이었다.
 
노련한 임권택 감독은 그런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는데 장례식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업’시키는 데 그만한 게 없다는 표정이었다. 철없는 기자들은 촬영장 이곳저곳에서 실제로 만들고 있는 (소품) 음식들을 집어 먹기도 하고 막걸리를 얻어 마시기도 했으며 감독과 배우들(안성기와 정경순, 방은진 등)과 시시덕거렸다. 그렇게 거나하게 지낸 후, 날이 저물면 다들 숙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기자들이 빠진 후에야 임권택 감독이 스태프들에게 소리쳤다고 한다. “애들 갔다. 이제 내일부터 진짜 찍자!” 그때까지의 카메라에는 필름이 없는, ‘공갈빵’ 촬영이었다는 것이다. 영리한 노친네 같으니라구.
 
영화 <축제>의 시나리오는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육상효 감독이 소설가와 영화감독 사이를 오가며 완성하는, 혁신적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사진=태흥영화사)
 
그때의 임권택 감독은 62세(1934년생)였다. 원작을 각색해 시나리오를 쓴 육상효(이후 유명감독이 됐다)는 서른세 살에 불과했던 때이다. <축제>는 당시 비교적 혁신적인 방식으로 제작됐는데 작가 이청준의 소설 쓰기와 감독 임권택의 영화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 사이를 시나리오 작가 육상효가 오가며 각색고(稿)를 만들어냈다. 제작사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이 과감한 제작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이야 어찌 됐든 현장을 취재하러 갔던 당시 조선일보의 이동진(세상에나 요즘 가장 고액의 방송 진행자이다)은 한겨레 ‘안 모 정숙’ 기자(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으로 이후 부천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원혜영 의원의 부인이었다)가 옆 방에서 코 고는 소리에 밤새 여관 복도에 나와 잤다고 한다. 그가 아침에 퀭한 눈으로 밥도 못 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기자들 가운데 술꾼들은 현장에서 받아 마신 막걸리에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 제작 PD가 ‘때려 먹인’ 소주와 소맥 잔까지 더해져 하나같이 널브러졌기에 누가 코를 고는지, 여기가 누추한 시골 여인숙 방인지 어디인지, 세상 모른 채 곯아떨어졌다. 영화 <축제> 촬영 현장의 기억은 역시 술밖에 남아 있지 않다. 술꾼들은 술만 먹는다. 술만 기억에 남는다.
 
연말에 이어지는 술자리와 이어지는 부고 행렬, 이어지는 장례식장 캔맥주 흡입으로 12월의 반은 알딸딸하게 지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해롱대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글이 대체로 안 좋아지고 그림이 그럭저럭해지며 예술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지 못하게 된 건 취하는 걸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들 대다수는 아마도 ‘약 빤’ 상태에서 토해낸 환각의 사실주의 같은 것이었다고 보인다. 때로 사람이 시대를 통찰하지만 반대로 시대가 사람을 알아보고 키워낼 때가 있다. 바스키아든, 앤디 워홀이든, 짐 모리슨이든 그들이 천재이기 이전에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그들이 천재이기를 원했던 것일 수 있다. 위대한 우리의 작가 이상이 이상일 수 있었던 것도, 제국주의라는 강압의 시대가 그로 하여 착란의 빼어난 시어를 뽑아내도록 한 것일 수 있다. 예술은 고흐처럼 미치거나, 미친 짓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자에게서 이루어진다. 그래도 약보다는 술이 낫다. 육체와 영혼을 파괴하는 건 똑같지만 좀 덜 광적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 전시회. (사진=오동진)
 
술이 없어졌거나 술이 너무 고급화됐거나 (아일라 계열의 아드벡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만 원대다) 술을 ‘죄악시’하는 풍조는 사회를 지나치게 정치 유튜브화하고 증권 뉴스화한다. 낭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규칙과 루틴의 삶만을 최우선으로 하고 형식적인 도덕주의와 원칙론에 입각한 법리적 판단과 소송전만을 생각하게 만든다. 술기운이 점점 빠져나가는 사회는 예측 가능 범위가 넓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재미가 없다. 젠장. 정말 재미가 없어 죽을 맛이 된다.
 
KTX 정차 역이기도 한 경기도 행신역에는 ‘아줌마 낚시 간다’란 술집이 있다. 김안숙이라는 작은 키의 초로의 여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술집 벽에는 전문가용 낚싯대가 걸려 있다. 김 사장이 직접 전남 여수에서 잡아 온 물고기를 상에 올려놓는 술집이다. 갈치회 맛이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다. 갈치를 설겅설겅 썰어서 그릇에 올려놓은 모양새는 바스키아의 그림 따위와는 비교 불가다. 예술이다. 바윗굴의 크기도 손바닥만 하다. 이런 술집에서 마시면 사실 술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회와 회무침을 이런저런 쌈에 싸서 우걱우걱 씹어 우물우물 삼키기 위해서는 소주 한 잔 혹은 소맥 한 잔, 그게 자신 없으면 그냥 맥주 한 잔이라도 필요한 법이다.
 
술집 '아줌마 낚시 간다'의 바윗굴은 크고 싱싱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오동진)
 
사람은 술이 없으면 몸이야 건강할는지 모르겠지만 개혁과 진보의 의지가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말도 안 돼. 무슨 궤변이야?) 술은 사람들을 연대하게 한다. 같이 살아가게 만든다. 서로를 받아들이게 하고 사회 저편에 조금이라도 밀려나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 상에 앉혀놓고 한 잔 술을 따라주게 만든다. 술집 주인 김안숙 여사가 오밤중에 장비들을 챙겨 새벽 바다에 도착해 낚싯대를 드리울 때 무슨 생각을 할까. 고기를 낚아 돈을 벌 궁리? 싱싱한 갈치가 끌려 나올 때면 그 갈치 맛에 환장하던 새 단골 LKS의 두툼한 얼굴과 새초롬한 그의 애인의 표정이 떠올려지지 않을까. 이 중늙은이 여성도 뱃머리에 앉아 갈치를 싹둑 잘라서 소주 한 잔을 먹을까. 아, 그 맛은 어떨까. 그때 떠오르는 태양의 여명은 어떤 느낌일까. 인생은 짧고 술은 영원하다. 그것은 속되지만 참된 진리이다. 낚시 다녀온 아줌마와 언제 한 잔 술을 다시 해야겠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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