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뉴딜)⑦국가의 일, 시민의 일
국회 산자위 소속 김종민 무소속 의원 특별기고
전략 국가, 스마트 민주주의, 정치는 모두를 향해
2026-08-14 06:00:00 2026-08-14 11:59:03
몇 년 전 기본소득 논쟁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 미래전략 논쟁이었다. 당시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현실이 된 AI 대전환. 대한민국은 이 파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4년 동안 국회 정무위와 산자위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왔던 김종민 의원이 7회에 걸친 연재 기고를 통해 대한민국 미래전략 '대전환 뉴딜'을 제안한다. 여러 쟁점에 대해 다양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제22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2024년 5월29일 국회 본관에 개원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근본 질문과 마주쳤다. 출자로 큰돈을 모아 미래에 투자한다 치자. 그 돈을 국가가 맡아 굴린다고? 과연 국가를 믿을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세 질문을 품고 있다. 국가를 믿을 수 있는가(국가의 일), 큰 결정을 향한 합의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시민의 일), 그 둘을 잇는 정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정치의 일). 마지막 글은 이 세 질문에 답한다.
 
국민은 스마트폰, 정치는 봉화(烽火)
 
OECD 2024년 조사에서 한국 국회 신뢰도는 20.56%, 30개국 중 28위였다. 2026년 발표에서는 중앙정부 신뢰도가 38개국 중 6위로 뛰었지만, 이 순위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여기'의 민원·재난 행정은 세계 최고인데, 의대 정원, 연금, 에너지, 지방 소멸처럼 미래를 여는 큰 결정은 번번이 미뤄지고 뒤집혔다. 현안 대응은 선진국, 미래 대응은 낙제점이라는 거다. 그 미래 대응을 맡고 있는 게 바로 정치다. 국민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데, 정치는 봉화(烽火)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국민이 큰돈을 맡기고도 정치에 휘둘리지 않게 만든 나라들이 있다. 노르웨이는 석유 국부펀드에 정치가 손대지 못하게 잠그고, 원금은 두고 열매만 쓰며, 보유 종목과 의결권까지 공개한다. 캐나다는 국민연금 고갈 위기에 보험료를 올리되 운용은 정치에서 떼어냈고, 75년간 안정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비트코인을 보라. 발행 주체도 보증 권위도 없는 코드가 설계 하나로 1조달러 넘는 신뢰를 만들었다. 최소한 비트코인보다는 더 신뢰받는 나라를 설계하자.
 
전략국가 - 국가의 일
 
대전환 시대, 국가는 어떤 국가여야 하나. 안보국가, 경찰국가, 복지국가를 지나 이제 '전략국가'다.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이 둘 있다. 먼저 베낄 답안지가 사라졌다. 추격 국가 반세기를 지나 선도국가 문턱에 선 우리는 스스로 답을 써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달라졌다. 스물네 시간 데이터에 연결된 똑똑한 국민이 들여다보고 검증하고 참견하기를 원한다. 이 발언권 에너지는 누를 수 없다. 밀려가거나 수렴해 승화시키거나 둘 중 하나다. 국가는 커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똑똑해져야 한다. 똑똑한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 가보지 않은 길을 여는 국가, 그래서 전략국가다.
 
전략국가로 가는 데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5년마다의 리셋이다. 씨 뿌린 정권과 열매 거둘 정권이 다르니 아무도 나무를 심지 않는다. 핀란드 의회처럼 여야가 함께하는 '국가미래위원회'를 세우고 국책연구기관을 연결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미래 전략 인프라를 만들자.
 
'전략국가, 스마트 국가(GovX)'는 AI·에너지·사람의 전환에 이은 거버넌스 전환이다. 미래 기구와 행정의 지능화만이 아니라 시민 숙의, 스마트 공론장에도 투자하자. 과학 인프라는 세계 1위인데 정부 효율성은 39위. 초격차 기술에는 투자하는데 왜 초격차 거버넌스에는 투자하지 않는가. 당장 돈이 안 돼 보이지만, 길게 보면 가장 크게 회수하는 투자가 거버넌스 투자다.
 
스마트 민주주의 - 시민의 일
 
모든 전략은 국민 합의 위에서만 지속된다. 그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 역량이 '스마트 민주주의'다.
 
OECD 조사에서 '정부가 하는 일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69%가,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22%만 정부를 신뢰했다. 신뢰를 가른 최대 변수는 발언권의 감각이었다. 신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자란다. 민주적 공론의 핵심은 '정확한 사실', '다양한 의견', '공정한 절차' 세 가지다. 이 셋을 AI와 웹3 등 디지털 기술로 한 차원 끌어올리는 게 스마트 민주주의다. 머릿수로 합산하는 집단지성을 넘어 사회 곳곳의 지혜를 가려 모아내는 '집현지성(集賢知性)'이다.
 
"인터넷 댓글창과 뭐가 다르냐"고 물을 것이다. 축구의 페널티킥 판정을 보자. 방법이 셋 있다. 관중석의 함성으로 정할 수 있다. 심판이 몫소리 크기에 압도되면 그럴 수 있다. 인민재판, 포퓰리즘, 인터넷 댓글창의 길이다. 심판의 고독한 결단에 맡길 수도 있다. 시작은 대표 민주주의지만 갈수록 기득권 엘리트 정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VAR이다. 느린 화면으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복수의 배심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미리 합의되고 모두가 지켜보는 '공정한 절차'로 결정한다. 불복으로 어수선하던 경기가 절차 하나로 승복의 경기가 됐다. 절차가 승복을 만든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농단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승자독식 다수결' 아니라 '승패공존 모두결'
 
아직 우리는 목소리 크기의 다수결 민주주의에 발이 묶여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뭐냐 물으면 대부분 다수결이라 답한다. 그러나 승자독식 다수결은 민주주의 정신이 아니다. 51대49에서 배제된 49는 다음 선거에서 뒤집으려 4년 내내 사생결단으로 맞서고, 30년짜리 정책도 5년마다 뒤집혀 국정은 시계추가 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승자독식 다수결'이 아니라 '승패공존 모두결'이다.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어원에는 '소수의 승복'이 괄호 안에 들어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서 그 국민(People)은 다수(Majority)가 아니라 소수까지 포함하는 모두(All)다.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맞다.
 
다수가 이끌되 소수가 승복하는 '모두의 민주주의', 어떻게 만드나. 우선 결과의 여칠야삼(與七野三)이다. 다수가 일곱을 관철하면서도 소수의 셋을 담아낼 때 진 쪽도 승복한다. 승자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니, 승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절차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란 애초에 없다. 그런데도 왜 승복하는가. 절차가 모두를 존중하고 열려 있으면, 내 의견까지 심사숙고했다면, 결과가 불만이어도 승복할 이유가 된다. 2017년 신고리 공론화에서 무작위로 뽑힌 시민 471명이 석 달 숙의해 답을 냈다. 결과가 탁월해서가 아니라 심사숙고의 절차라서 소수가 승복했고, 그 승복이 있어 정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스마트 민주주의는 목소리 크기로 결정하는 '콜로세움 민주주의'를 넘어 승자와 패자 모두가 승복하는 '모두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똑똑한 개인을 숫자만 많이 모은다고 '모두'가 되는 건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 '함께 심사숙고'할 때 '모두'를 위한 탁월한 지혜도, 승복의 에너지도 나온다. 그 길이 '집현 민주주의'의 길이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김민석(왼쪽부터)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8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광역시당 정기당원대회 및 당대표·최고위원 선출 순회경선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운영체제(O/S) 교체 - 정치대전환
 
국가의 일과 시민의 일은 저절로 만나지 않는다. 전략국가와 시민 숙의를 법과 예산과 제도로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정치는 대표, 참여, 공론으로 이뤄지고, 결과를 책임지는 환류로 완성된다. 그러나 지금 대표는 역할이 아니라 신분이 됐고, 참여는 선거 때의 동원이, 공론은 진영의 함성이 됐다. 부품 교체 수준의 정치개혁으로는 안 된다. 운영체제(O/S)를 교체하는 '정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 비전은 '모두의 민주주의'다. 대표는 모두를 향해 일하고, 시민은 숙의로 상시 참여하며, 공론은 사실과 절차 위에서 지혜를 모은다.
 
지금의 네거티브 정치는 정치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산물이다. '택일(擇一) 선거'에 시청각 소셜미디어의 '감정 자극'까지 겹쳐, 증오를 조직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 됐다. 규칙을 바꿔야 한다.
 
바꿀 건 많지만 하나만 들자. 택일 선거의 대안, '최대다수제' 선거다. Top3 혹은 후보를 2~4명으로 추린 결선에서 유권자가 모든 후보에 찬반을 표시하고, 가장 많은 찬성을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70, 80% 찬성의 당선자가 나올 수 있고, 과반 찬성이 없으면 다시 선거한다. 내 편의 열광만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증오를 조직하는 게 아니라 신뢰를 얻어야 승리한다. 최대다수제가 노리는 것은 최대 다수의 신뢰와 승복 위에 선 대표다. 그 위에 서야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큰 성과를 낸다. 대표를 뽑을 때의 짜릿한 효능감보다, 뽑힌 대표가 얼마나 일을 잘해내느냐가 민주주의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
 
정당 경선부터 해볼 수 있다. 마침 민주당 대표 경선이 1~3순위 선호투표제인데, 최대다수제로 바꾸면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가장 넓은 지지를 받아야 이기니 상대 공격 대신 비전과 능력과 계획을 말해야 한다. 당대표 선거에서 해보고 자치단체장과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으로 이어가자.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Top3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국회의원 선거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최대 다수가 신뢰하고 승복하는 대표와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 몸에 먼저 새 규칙을 적용한 정당만이 나라의 규칙을 바꾸자고 말할 자격을 얻는다.
 
대의(代議)냐 대중(大衆)이냐, 백 년 다툼을 끝내자. 승자독식 다수결에서 모두의 민주주의로, 집단지성에서 집현지성으로.
 
지난 3월18일 서울 성북구의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에 채용 공고가 게시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각자도생이 일상어가 된 나라
 
서울 집값은 연소득 약 14년 치, 39세 이하 무주택 청년 가구는 361만이다. 자녀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54.1%)이 '높다'(29.9%)를 크게 앞질렀다. 사다리는 무너지고 있다. 각자도생은 임진왜란 때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니 각자 살길을 찾으라는 전쟁터의 비명이었다. 그 비명이 오늘의 일상어가 됐다. 여기에 AI 충격까지 더해졌다. 챗GPT 등장 후 3년간 청년 일자리가 21만개 넘게 줄었고, 감소분의 98.6%가 AI 노출 업종이었다. 결정을 미루는 사이 기술은 누군가의 밥그릇을 치우고 있다.
 
대전환의 세 축은 전략 투자, 일자리 투자, 국민자산 투자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답이 미래투자기금이라면, '누가 할 것인가'의 답이 전략국가와 스마트 민주주의, 정치 대전환이다.
 
출발은 구체적으로 하는게 좋다. 수억 원대 성과급과 첫 일자리의 벽 앞에 멈춰 선 청년, 그 골짜기에 다리를 놓자. 반도체 초과수익을 20대 청년의 숙련 일자리에 투자하자. AI가 청년의 일자리를 지운다면, 그 수익의 일부로 청년의 내일을 다시 세우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작지만 방향은 분명한 첫걸음이다.
 
새로운 기술에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따라야 한다. 새 정부의 개혁 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앞으로 3~5년이 골든타임이다. 사회개혁의 에너지가 사람 심판에서 구조 개혁으로 나아갈 때 대전환, 대개혁은 완성된다. 블랙홀은 빛조차 못 빠져나오는 어둠이지만, 인간은 가장 깊은 어둠에서도 언제나 빛을 만들어왔다. 작은 실개천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은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승자독식 블랙홀의 각자 사는 세상에서, 함께 사는 세상으로. 그 첫걸음을 함께 시작하자.
 
대전환 뉴딜 연재 순서
 
- 왜 대전환 뉴딜인가, 승자독식 블랙홀, 3겹의 대전환, 초격차 민생, 정치의 일
 
- 미래전략, 연결과 순환, 3대 미래투자, 새로운 돈, 새로운 국가
 
- 전략투자, AX, GX, HX
 
- 일자리 대전환, 지능산업 일자리, 숙련의 시간, 활동소득
 
- 국민자산제, 자산소득 대중화, 농지개혁과 자산개혁
 
- 미래투자기금, 세금이 아닌 출자, 새로운 사회계약
 
- 전략국가, 스마트 국가, 스마트 민주주의
 
김종민 무소속 의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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