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간 로봇 마니아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강철의 격투장’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습니다. 중국의 로봇 기업 엔진에이아이 로보틱스 테크놀로지(ENGINEAI Robotics Technology, 이하 엔진에이아이)는 지난 9일 선전에서 ‘제1회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자유 격투 리그(Ultimate Robot Knock-out Legend, 이하 URKL)’ 출범식을 갖고, 총상금 21억 원 규모의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차원 다른 ‘풀사이즈 AI 격투’
이번 URKL의 출범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동안 로봇 스포츠계가 넘지 못했던 ‘이족보행의 불안정성’과 ‘원격 조종의 딜레이’를 최신 AI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선언이자, 로봇 산업의 기술 트렌드가 ‘제어’에서 ‘자율 판단’으로 넘어갔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격투 리그(URKL) 홍보 포스터(사진=엔진에이아이)
지금까지 세계 로봇 격투 시장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미국의 ‘배틀보츠(BattleBots)’와 영국의 ‘로봇 워즈(Robot Wars)’였습니다. 이들은 바퀴 달린 차량형 로봇에 회전 톱날이나 망치를 달아 상대를 부수는 데 집중했습니다. 화려한 파괴력은 있었지만, 인간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와는 거리가 먼 기계장치 간의 충돌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달리 일본의 ‘로보원(ROBO-ONE)’은 이족보행 로봇끼리 겨루는 방식을 채택했으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소형(RC카 크기) 위주로 진행되거나 움직임이 둔탁해 대중적인 상업 스포츠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관심을 끌었던 2017년 미국과 일본이 벌인 거대 로봇 대결은 느린 속도와 연출된 동작으로 아쉬움을 남긴 바 있습니다.
URKL에서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성인 남성 크기(Full-size)의 휴머노이드가 링 위에 오르며, 무엇보다 사람이 조종하지 않는 ‘자율 전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기존 대회들과 궤를 달리하게 된 것입니다.
체화지능과 전고체 배터리
전문가들은 URKL이 가능해진 배경으로 2025~2026년 급격히 발전한 두 가지 핵심 기술을 꼽습니다.
첫째는 ‘체화지능(Embodied Intelligence)’입니다. 과거의 로봇이 입력된 명령만 수행했다면, URKL에 출전하는 로봇들은 시각 센서(LiDAR, 뎁스 카메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AI가 스스로 판단해 0.01초 단위로 회피하거나 반격합니다. 엔진에이아이는 이를 위해 태국 무에타이 챔피언 부아카오(Buakaw Banchamek)를 초청, 실제 격투 데이터를 로봇에 학습시키는 ‘중국 로봇 쿵푸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둘째는 하드웨어의 혁신입니다. 격렬한 타격전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재 위험이 치명적입니다. URKL 참가 로봇들은 충격에 강하고 화재 위험이 없는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를 탑재해 안전성을 확보했습니다. 여기에 중형차 엔진급 토크(450N·m)를 내는 고성능 액추에이터(관절 모터)가 결합되어, 사람처럼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인 타격이 가능해졌습니다.
지난해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로보월드에서 유니트리 로아스 휴머노이드 로봇이 격투경기를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기술 검증의 최전선”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엔진에이아이는 파격적인 보상을 내걸었습니다. 최종 우승 팀에게는 약 1000만 위안(한화 약 21억 원)에 달하는 10kg 순금 챔피언 벨트가 수여됩니다.
엔진에이아이의 자오퉁양 CEO는 출범식에서 “URKL은 단순한 쇼가 아니라 전 세계 연구팀들이 핵심 알고리즘과 소재 기술을 검증하는 ‘실전 테스트 베드’라고 강조했습니다. 주최 측은 URKL이 글로벌 기술팀에 고강도 실전 검증 무대를 제공해 핵심 기술 테스트, 제품 고도화 및 인재 발굴을 촉진하고, 연구 성과의 실제 응용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이번 시즌 경기는 룽강 FRL 로봇 클럽에서 상시 운영되며, 연구개발(R&D) 성과가 즉시 제품 고도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2026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스포츠 열기와 맞물려 출범한 URKL. 과연 이 대회가 과거의 로봇 쇼를 넘어, AI와 로봇 공학이 결합된 진정한 ‘미래형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세계 테크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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