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하는 등 정관 변경을 잇달아 추진합니다.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제2차 상법 개정안에 앞서 투명한 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Value-up)’ 정책에 발을 맞추려는 행보로 풀이됩니다.
서울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을지로 마천루 전경. (사진=뉴시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달 1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와 전자주주총회 도입,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정관 일부 변경안을 결의합니다. 이에 따라 기존 이사의 선임과 보선에 적용했던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에는 상법 제382조의2에서 규정하는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은 삭제되며 이사의 충실의무가 강화됩니다.
삼성전자의 결정은 개정 상법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1차 상법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골자로 한 2차 상법 개정이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기업에 직접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것은 ‘집중투표제’입니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의결권을 선출 이사 수만큼 부여하고 이를 집중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소수주주의 이사 선임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사회의 감시 기능을 높일 수 있어섭니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1표가 아닌 3표를 한 명의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어 대주주가 선호하는 후보의 이사회 독식을 막고 소수주주들의 발언권이 확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적대적 M&A를 노리는 사모펀드나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소수주주들이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뺏는 등 경영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우려가 적잖았습니다.
다만 상법 개정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미룰 수 없게 된 만큼 올해 주총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SDS, 삼성중공업, 삼성전기,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기아, 현대모비스 등 주요 그룹 계열사 대다수가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를 추진합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개정 상법을 반영한 정관 변경은 집중투표제 도입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내달 23일 주주총회를 여는 LG전자는 감사위원 선·해임 시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고 감사위원회 분리 선출 인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는 등 내용의 정관 변경을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기아는 기존 ‘회사’에 국한됐던 이사의 보고의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며, 감사위원회 위원 중 2명은 주주총회 결의로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출하는 방안을 의결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 삼성전자와 LG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모비스, 한화오션 등은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조문을 정비하며 전자주주총회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와 함께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면서 주주 중심의 거버넌스는 강화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KB증권 ESG리서치팀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3월 정기주총은 개정 상법 시행 후 첫 본격 주총으로 독립이사 비율 상향과 감사위원 3%룰 적용, 9월 집중투표제 정관 배제 금지가 순차 시행되며, 이미 발효된 이사 충실의무의 주주 확대까지 더하면 이사회를 둘러싼 법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평가했습니다. 상법과 스튜어드십 코드가 동시에 강화되면서 이사회 구성과 의결권 행사의 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어 “행동주의 펀드 개입이 밸류에이션 갭 축소의 촉매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집중투표 배제 조항을 이미 삭제하고 분리 선출 감사위원 2인을 선제 확보한 기업은 제도 리스크가 해소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 거버넌스 프리미엄이 밸류에이션에 반영될 여지가 크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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