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사람은 되는데 우리는 해당이 안 된대요.”
“저쪽 지역은 되는데 우리 지역은 안 된다고 하네요.”
최근 부모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세금을 내고, 비슷한 고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 그런데 육아정책의 문턱은 누군가에게는 열리고, 누군가에게는 닫혀 있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체감은 공정하지 않다.
육아정책은 특정 가정을 편하게 하려는 제도가 아니다.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과제 속에서 인구 구조와 노동시장, 지역 균형을 함께 고민하는 핵심 정책이다. 그럼에도 정책의 적용 범위와 지역별 차이는 부모들에게 또 다른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인이 비난받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더욱이 건강상의 이유로 출산이 어려운 가정조차 지원에서 배제되는 사례를 보면,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아이를 낳는 일은 과연 한 개인의 몫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책임인가.
기준은 왜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아이들의 성장 환경 또한 과거와 다르다. 발달 속도는 획일적이지 않다. 교육 현장만 보더라도 연령이 동일하지 않아도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한국과학기술원 캠퍼스에서는 한 학년 안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한다. 나이가 같아서가 아니라, 그 교육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교실에 앉는 것이다.
유치원 입학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부모가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이의 발달 단계가 이미 그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도는 여전히 ‘출생일’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아이를 나눈다. 행정의 효율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효율이 곧 정의는 아니다.
육아는 오랫동안 ‘가정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돌봄 공백은 곧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어지고, 이는 노동시장과 국가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역마다 지원 수준이 다르면, 인구 이동과 지역 소멸 문제에도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육아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공적 과제다. 그럼에도 정책이 지역별·지자체별로 다르게 적용되거나, 기준선 하나로 지원 여부가 갈린다면 부모들은 국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육아정책이 신뢰성을 높이려면 최소한의 전국 공통 기준을 마련해 격차를 줄여야 한다. (사진=뉴시스)
저출생 해법은 출산율 통계의 반등에 있지 않다. 정책이 예측 가능하고, 일관되며, 형평성을 갖추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방향은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육아정책은 더 촘촘해야 하고, 동시에 더 유연해야 한다. 단순한 소득·연령 기준을 넘어 발달 단계, 가정 상황, 지역 여건을 함께 고려하는 다층적 설계가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격차를 줄이고, 최소한의 전국 공통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아이를 낳는 일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환경은 사회가 만든다. 같은 세금을 내고도 다른 기회를 경험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정책은 신뢰를 잃는다. 이제는 묻고 답해야 할 때다. 아이를 낳는 일이 개인의 몫인지, 나라 전체의 몫인지. 그 답이 분명해질 때, 육아정책도 비로소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정원 쉼표힐링팜 CEO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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